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을 우연히 읽고 있다.
그레이스 페일리.
이름이 너무 예쁘게 느껴졌다. 마치, 작가라면 이런 이름이어야 하는 것처럼,
그레이스 페일리.
내 필명인 ‘아인잠’보다 훨씬 품격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격조 높고 우아한, 마치 백조의 기풍이 느껴지는 이름 같달까. (음메, 기죽어!)
때문에 이 작가는 어떤 작가일까 궁금해졌고 소설을 검색해보다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이라는 소설을 선택했다.
소설을 읽기도 전에, 나는 이미 녹다운되었다.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녀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읽어보면, 작품이 말도 안 되게 재미있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이야기와 문체에는 한번 빠져들면 이제 그것 없이는 못 견딜 것 같은 신비로운 중독성이 있다. (중략)
페일리 씨는 어쨌거나 전설적이라 할 만큼 작품을 적게 발표하는 작가로 1959년에 첫 단편집을 낸 후 사십 년 동안 단 세 권의 단편집 밖에 발표하지 않았다.(중략)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은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1974년에 발표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오래된 느낌이 없다. 나는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이 단편집을 추천하며, 물론 남성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틀림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날개에 소개된 그녀에 대해 옮기자면,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정치운동가, 교사. 192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여차 저차 해서 훌륭한 상도 많이 받고 여러 활동으로 활약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내가 첫 아이를 출산했던 2007년, 그녀는 지병인 암이 악화되어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생전에 가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레이스 페일리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인종차별과 군국주의, 탐욕이 없는 세상.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싸울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후손들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그 해에 태어났던 내 큰 아이는 14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종차별과 군국주의, 탐욕은 세상에 가득하고, 여성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싸울 필요가 있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후손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하늘나라의 그레이스 페일리는 뭐라고 말할까.
그리고 읽게 된 첫 단편소설에서, 나는 내 안을 훅 들어오는 그녀의 놀라운 글에 깜짝 놀라서 딸꾹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27년을 함께 사는 내내 전남편은 속 좁은 말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말들은 막힌 관을 뚫는 배관공의 긴 와이어처럼 정말 좁다랗게 생겨서, 내 귓속으로 파고들어 목을 타고 거의 심장 부근까지 와 닿곤 했다. 그러고 나면 전남편은 배관공의 좁다란 장비가 목에 걸린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를 내버려 두고 어딘가로 사라지곤 했다.”
그녀의 글은 심장을 벌렁거리게 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서 나를 만난 그녀가 내 멱살을 붙들고 얼굴을 가까이 댄 채,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 이제 잘 만났다. 내가 그동안 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어, 자 이제 들어봐, 한다~’
떨림을 안고,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나.
그리고 내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나는 뭘 해달라거나 이건 꼭 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도 뭔가 소망하는 건 있다. 이를 테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두 주 만에 책 두 권을 반납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제도를 바꾸고 사랑하는 이 도심의 여러 문제와 관련하여 예산위원회에서 연설하는 유력한 시민이 되고 싶다.”
(2020년도 이 시대야,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문을 닫아 못 갈지언정, 낮은 독서율로 일주일에 책 두 권을 반납하기가 어려울지언정! 그레이스 페일리의 시대에, 그녀는 진정 선구자였다!)
그녀는 이혼과 재혼의 경험이 있다. 실제 이야기일까. 그녀의 소설 속 상상일까.
“전남편이든 아니면 지금 사는 남편이든 죽을 때까지 한 남자와 부부로 살고 싶었다. 두 사람 모두 평생을 함께 할 만한 됨됨이를 지녔으며, 지나고보니 사실 한평생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짧은 한 평생 동안 한 남자의 됨됨이를 바닥까지 알 수도 없고, 바위 속에 감춰진 그 사람의 여러 가지 이유를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자각한다.
그녀의 단편소설집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 수록된, <소망>이라는 단편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그래! 나는 저 두 권의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기로 했다. 다들 나에 대해 상대를 잘 받아주는 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이 결정이 입증해주듯 나 역시 누가 불쑥 나타나거나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혹은 그로 인해 내가 평가받게 될 때 뭔가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다.’
태어나 처음 읽게 된 그녀의 단편소설집, 그 안에서도 첫 번째 실린 단편소설에서 나는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첫째는 그녀의 이름에 먼저 반했고, (나란 여자, 쉬운 여자)
그녀를 소개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속에서 반했고,
작가 소개와,
첫 단편소설, 모든 처음, 처음, 처음, 보는 것에서 마다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이 세상에 그런 그녀가 살다가 갔구나, 그래서 이렇게 그녀의 글을 읽게 된 것이 행복한 오늘이었다.
그레이스 페일리.
내겐 그레이스 켈리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녀.
필명을 그레이스 아인잠으로 바꿀까 보다.
다음에, 이다음에, 나도 뭔가 소설 같은 걸 쓰게 되면,
두 번째 필명은 그레이스 뭔가로... 해보면 어떨까 혼자 웃었다 말았다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