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Oct 28. 2020

마지막 순간에 드러나는 진실에 내 감정의 진실이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읽고

그레이스 페일리의 단편소설집,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떠나는 것과 떠나지 못하는 것, 그 두 가지 모두에 정서적 진실이 놓여 있었다.’     


떠나는 중에 있는 사람과, 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못하는 상황, 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않는 것을 선택한 사람,

떠나고 싶으나 갈 곳이 없어서 못 가는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근래에 들으면서 나는 이 책의 구절을 생각했다.     

‘떠나는 것과 떠나지 못하는 것, 그 두 가지 모두에 정서적 진실이 놓여 있었다.’

          

떠났다면 떠난 것에 정서적 진실이, 떠나지 못하는 것에는 떠나지 못하는 것에 정서적 진실이 놓여있는 것.

그 진실이라는 것이 뭘까.     

떠나온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것에 나의 진실이 있다.

가정을 떠나왔다면,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정의 의미에 나의 진실이 있고

학교를 떠나왔다면, 학교를 떠남으로 내가 지키고자 했던 꿈에 나의 진실이 있고,

회사를 떠나왔다면, 회사를 떠남으로 내가 지키고자 하는 삶에 진실이 있는 것 아닐까.


일단 떠나왔다는 것은 어딘가로 다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고, 기대가 된다.

다음 어디로 향할지를 의지로, 진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니,

그 기회를 얻고자, 아마도 사람들은 무언가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자신의 진실을 지키는 것이다.


비몽사몽으로 지내며, 누군가 ‘대리석 같은 어깨의 짐을’ 자신에게 지운 것을 감당하는 마음의 진실은?

‘일 분도 편히 누워있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현실’에 넌더리가 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진실은?

죽기 직전만큼 힘들면서도 죽을 때까지 한 남자, 혹은 여자와 부부로 살고 싶은 마음의 진실은?

‘심장 속 감정이 부서져버릴 때’까지도 견디는 마음의 진실은?     


마음속 커튼 뒤에 숨어서 자신의 감정과 현실의 문제를 그저 견뎌내는 것이 인생이라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돌아보니, 인생에서 작은 얼룩’에 지나지 않은 일일지라도, 현실에서는 돌아볼 틈이 없다. 내 마음 안에서조차 커튼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으려는 진실을 불러내고 알아내려는 일은 얼마나 큰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까.     

그래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 마음의 진실을 들여다보고, 말을 걸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진실이다.

 

그레이스 페일리의 단편소설집인 이 책에서, 내가 읽을수록 매력을 느낀 글은 사실 이 부분이다.  

   

“중요한 대화가 아주 간절했던 순간, 남자의 모든 세계를 코로 들이마시며 냄새로 느끼고 싶었던 순간, 나의 다정한 언어를 그의 시들지 않는 육체적 사랑으로 바꾸어 표현할 줄 아는, 적어도 한 명의 똑똑한 동반자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 순간, 나는 별 도리없이 아이들 가득한 동네 공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올해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에세이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소설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특별히 매력적인 문장으로 와 닿았다. 결코 내 손끝에서 써지지 않을 것 같은 내용과 표현의 글.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 뭔가 진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써질 수나 있을까 싶은 글.


사람들은 자신의 간절함을 생각보다 적게 표현하면서 살아간다.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그저 견디고 참아내는 것이 미덕인 상황에서,

지나가면 나아지고 달라질 것이란 기대에서,

기다리고 포기하고 그런 일을 반복하면서도 그래도 좋아질 거라 믿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향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침묵하며, 정 힘들때는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 위로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음을 달래며 살아간다.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니까.



'각각의 보편성을 모아놓은 사전이라고 할 만한 나'  


비록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하고 표현할 때에, 소설 속 문장처럼 '각각의 보편성을 모아놓았다' 할지라도, 그 보편성이 갖고 있는 진실도 진실이다.

그 진실이 가치 있고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말로서, 글로서, 행동으로서.

말로서 침묵하고, 글과 행동으로도 옮기지 않으며 감정의 진실이 마음속 커튼 뒤에 숨어서 가려질 때, 언젠가는 바닷속으로 침몰해서 가라앉을 배처럼. 위태롭게 느껴지는 게 있다.

결국엔 몸 밖으로 드러난 신체적, 정신적 '병'의 모습으로 인해서 그 진실에 다가갈 때. 사람의 생과 사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살아있을때, 이렇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때, 나의 감정의 진실에 다가가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레이스 페일리의 소설을 읽으며 그녀의 자유로운 글 속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내 감정의 진실을 찾아가본다.


by 아인잠's girl.
이전 19화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