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들을 볼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는 모르는 사이에서 출발한다. 모르는 사이지만 내가 보고 싶은 면이 상대에게 있기에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그러나 관계가 지속되면서 내가 보고 싶어 했던 면은 상대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처 보지 못한, 또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면이 세월의 풍화작용 속에 서서히 드러난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모르는 사이에서 시작되어 아는 사이로 발전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내가 보고 싶은 면'을 상대방에게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찾는 면은 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예의, 이해심, 따뜻함, 일관됨, 신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모르는 사이에서부터 시작해 아는 사이가 되기까지 때로는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조심스럽게 올라가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듯 고속으로 가까워지기도 한다. 아는 사이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다시 모르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시간과 같지 않다는 점이 관계에서 느끼는 허무함이다.
우리 그렇게 가까웠는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도 있고, 가깝다고 느껴서 더 가까이 다가갔지만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상대의 모습에서 상처 받아 발걸음을 돌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내가 어떻게 소화하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내 인생이 지속되는 동안 해결해가야 할 난제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계속해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시인의 시처럼.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나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날갯짓이다.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기를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기를
기진맥진 지친 한 영혼을 그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헛되이 살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고픈 꿈이다.
내 가슴앓이가 그로 인해 멈추어지고 나의 아픔이 달래어지고 나의 고통이 가라앉으며, 나의 영혼을 쉴 곳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걸음걸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달려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내 안의 풍파가 가라앉길 기다려 지친 누군가의 마음을 내 배에 태우기에는 내 배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가슴앓이가 멈추어지지 않은 채 누군가의 가슴을 위로할 수 없음도 느끼게 되었다.
결혼도, 이별도, 어긋나는 모든 인연에 나는 오래된 누군가의 위로를 더해서 내 마음을 전달하며 살아가고 싶다.
나의 모나고 어리석었던 부분이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드러나 다듬어져서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이 위로하고 안을 수 있기를. 인생의 커다란 항구에 모두 모이는 그 순간에 나의 뱃고동 소리가 힘차게 울리기를 상상해본다. 우린 비록 같을 수 없어 함께 여행하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쉬게 될 때에 우리의 걸어온 길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이근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