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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Oct 16. 2020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으며...

글쓰는 것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책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읽다가 문득 내가 어느 컴컴한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상상을 해본다.     


‘식당은 어두컴컴하게, 창문도 없이, 그림자들을 막고 서 있었고, 높낮이가 다른, 하나는 키가 크고, 하나는 몽땅한 빨간 촛불 두 자루가 밀랍 더께가 앉은 녹색 병에 꽂혀, 촛불들이 다 그렇듯 초라한 노란색 불빛을 뿜으며 희미하기 짝이 없는 낮의 햇살과 싸우고 있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불빛이 밀랍 더께가 앉은 녹색 병 위에서 힘없이 흔들린다.

그곳에서 M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M은 어쩌다가 그렇게 미친 거래요?”     

어느 날 종교 광신도가 된 M은 ‘진주만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예언을 시작했다고 한다. ’

반듯하게 누워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직 말, 말, 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만 했다. 그리고 2년간 이어진 정신병원 입원.

한 번도 남편의 말에 반박하거나 남편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던 그녀, 그보다 21살이나 많은 남편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비를 쫓아다니는 짓은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와 진짜 당신 책임을 다하란 말이야”라고...    

 

실비아 플라스는 식당에서 느낀 바를 그녀의 일기에 적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  우리가 선심을 베풀며 당연히 여기는 사람들의 혓바닥에 의해 인생이 얼마나 산산조각 나고 뒤틀리는지.”          


누군가의 말, 특히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인생이 뒤틀리고, 속이 뒤틀리고, 그래서 생각도 말도 따라서 뒤틀리게 된다. 그렇게 뒤틀린 말들을 어쩜 사람들은 주고받으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     

조울증이 심해서 서른 나이에 일찍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도 어쩌면 사람들의 선심 어린 말들로 인해 더 나빠져갔을 것 같다.

그녀의 글들을 보면, 그녀가 정말 밝고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을 썼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이 거침없고 새로워서 그녀가 쓰는 로맨스 소설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지나치게 완벽함을 지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글 쓰는 사람에게 ‘완벽함’이란 불가능이다. 글 자체가 고통인데, 어떻게 완벽하기까지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고통에 익숙해지는 법, 그건 가슴 아픈 일이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밥을 먹고 집을 가지려면 귀찮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가슴 아프다.’     


‘내 최선의 한계를 아는 건 오직 나 밖에 없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고통과 실패 없이 당장 완벽해지지 못한다고 해서 삶에서 달아나 영원히 나 자신을 망치든가, 나름대로 삶에 맞서 “지금 이 일에 최선을 다한다든가.”     

그러나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지 않고, 끝내 ‘삶에서 달아나’ 버렸다.

어린 두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어놓고, 주방의 문을 테이프로 봉해서 가스밸브를 열었다고 한다. 서른 젊은 나이에. 슬픈 일이다.

끝내 살아주어서, 글을 써주었다면 그녀가 남긴 글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매일 글을 써야지, 아무리 형편없는 글이라도. 그러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생각하던 그녀는 정신적으로 최대한 힘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출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더 좋은 작가가 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출판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그러다가도 힘들어했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소설, 아니, 하루에 3페이지짜리 할당량은 흉측하다. 도대체 제대로 잡히지를 않는다. 나는 1마일 길이쯤 되는 지팡이 끝에 뭉툭한 연필을 매달고, 지평선 너머 아득히 멀리 있는 무엇인가에다 글을 쓰고 있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이 상황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글을, 좋은 글을, 더 좋은 글을, 더 나은 글을, 훌륭한 글을 매번 간절히 쓰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벽에 부딪히곤 했던 그녀는 이렇게 글에 대한 고뇌를 남겨두고 세상에 없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느껴졌다.

그녀의 말마따나 슬프게도 ‘버지니아 울프 적인’ 성격으로, 때론 심한 조울증으로 여러 부침을 겪어야 했다.

한 줄 한 줄 생각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하면서 읽고 있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그녀의 일기 속에서 보았던 ‘일이 구원’이라는 말이 요즘 한 번씩 떠오른다.

뭔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생각이 정돈되지 않을 때, 그저 일을 찾아 하고 있다.

나 역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고(많고), ‘백치 같은 침묵’으로 앉아있기도 하다.    

 

‘진짜 당신의 책임을 다하라’     

나의 책임은 뭘까? 나의 책임에 대해서도, 글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들을 실비아 플라스와 견줘보면서 떠오르는 물음표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그녀가 주는 삶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공책에 메모를 하지 않으면, “삶을 포착한다”는 건 가망 없는 일이다.’     

그녀의 수많은 메모들이 책의 어느 부분에 있을까, 그녀가 포착한 삶의 장면들은 어떤 그림들일까 느껴보면서 책 읽는 요즘, 이렇게 글을 통해서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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