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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가고, 사람은 남는 것

by 아인잠

내가 좋아하는 길, 이 길을 따라 수도 없이 걷고,

이 길 앞에 한 참을 서 있고,

그러다 혼자 남아 많이 울었었다.

울었던 날보다 웃었던 날이 더 많았지만.

첫 째가 첫 세발자전거를 탈 때에도

둘째가 첫 유모차를 탈 때에도

둘째가 자라서 첫 세발자전거를 타고, 두 발 자전거를 탈 때에도

셋째가 첫 유모차를 타고, 첫 세발자전거를 탈 때에도

그러다 첫째, 둘째, 셋째가 동시에 뛰어나가 놀 때에도 나는 이 길 앞에 서있었다.

첫째가 내 손을 잡고, 둘째가 내가 끄는 유모차에 타고, 셋째가 내 등에 업혀있었을 때에도

나는 세 아이에게 내 마음을 아낌없이 쏟으면서 이 길을 걸었다.

10년 전에 피었던 꽃이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피어있지만

해마다 새로웠다. 작년에 피었던 꽃이 올해에도 피어날 때 또다시 싱그럽고 또다시 눈부셨다.

해맑은 꽃이 아이들의 얼굴처럼 향기로운 얼굴을 활짝 펼 때

내 마음에도 행복한 꽃향기가 퍼지는 듯했다.


큰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이제 나와 같은 꿈을 꾼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엄마는 이야기를 짓는 꿈.



엄마가 글을 쓰면, 아이는 옆에서 그림을 그린다.

색을 입히고, 꿈을 입히고,

색을 채우고, 꿈을 채우고...


막내가 그려놓고 간 그림에서 쪼르륵 피어있는 새싹이 내 세 아이들 같아 보여서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글 써야 하는데...

엄마꽃 옆에 바짝 붙은 새싹이 셋째. 왼쪽에 멀찍이 떨어져있는 새싹은 셋째와 싸운 둘째. 이것은 셋째의 그림이므로 ㅎㅎㅎ


오늘 수업한 학생이 아이들에게 주라고 비닐에 젤리를 한 봉지 담아주었다.

뭐라고 쓴 글인가 집에 와서 가만히 보니 웃음이 스며 나온다.

'이 젤리 먹고 힘내렴!'

그런데 오늘 부모님께 편지 쓰기 하며 맨 아래에 00 올림이라고 쓰라했더니 아이들에게 젤리 주라면서 00 올림이라고 썼다. 그 순수함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계절은 가고 사람은 남는 것.

젤리는 가고 이름은 남는 것.

시간은 가도 마음은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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