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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May 09. 2020

엄마,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아가세요

최근에 유선경 작가의 <아주 오래된 말들의 위로>라는 책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에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잘 아는 동화인 <인어공주>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원작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보통 많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은 지나치게 축약된 버전이어서 원작의 내용이나 결말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인어공주 역시 그렇다.  

원래 인어공주 원작의 내용에서 인어공주는 모르는 게 없는 할머니에게 가서 사람에 대해 물었고 그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에게는 죽지 않는 영혼이란 게 없어서 다시 태어날 수가 없어. 푸른 해초같이 한 번 잘리면 다시는 꽃을 피울 수가 없지. 반면에 인간에게는 영원히 사는 영혼이란 게 있어서 몸이 먼지로 변한 뒤에도 다시 살 수 있단다. 그 영혼이 깨끗한 공기를 뚫고 올라가 빛나는 별까지 올라간다지!”    

 

그렇다면, 죽지 않는 영혼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냐는 인어공주의 질문에 할머니는 말했다.      

“없어. 한 사람이 제 부모보다도 더 널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면 모를까. (중략)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어. 인간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꼬리를 흉하다고 생각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결말은 왕자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 인어공주가 바닷속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남은 이야기가 더 있다고 한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가 물었다.


“저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공기의 딸들에게요! 인어에게는 죽지 않는 영혼이 없어서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그 영혼을 얻을 수 없지요.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이의 힘이 필요해요. 공기의 딸들도 마찬가지로 죽지 않는 영혼 같은 것이 없어요. 하지만 착한 일을 해서 영혼을 얻을 수 있죠. 우리가 300년 동안 착한 일을 하면 우리는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을 얻게 되지요. 가여운 인어공주님. 당신도 우리처럼 온 마음으로 노력했어요. 고통을 받고 그걸 참아냈지요. 그런 착한 노력 덕분에 천사의 세상으로 올라오게 된 거예요. 이제 당신도 300년이 지나면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어요.”     


인어공주 원작에서 애초에 인어공주가 할머니에게 물었던 질문은 사랑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 영혼을 얻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인어공주가 얻은 것은 왕자의 사랑을 얻을 기회였다.

인어공주가 품은 소원은 왕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왕자의 사랑을 얻어 죽지 않는 영혼을 얻는 것이었다. 즉, 왕자의 사랑을 받기 위함이 아닌, 죽지 않는 영혼을 얻기 위해서, 그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을 원하는 본래의 이유는 인어공주가 죽지 않는 영혼을 갖고 싶어 한 이유와 같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설명한다. 안데르센은 <인어공주>에서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질 방법이 사랑의 완성에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이는 인어공주의 집필을 마치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어공주가 푸케의 운디네처럼 불멸의 영혼을 타인의 사랑에 의존해 얻게 하지 않았어... 그런 식으로 영혼을 얻는 건 운에 달린 거야.”   

  

인어공주를 쓸 당시에 안데르센은 첫 번째 사랑에 이어 두 번째 사랑에도 실패한 후였다고 한다. 그는 이별을 통해 배운 것이다. 타인의 사랑에 의존하는 사랑, 영혼, 인생이라면 그것은 너무 불안한 것이라고, 왜냐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운에 달렸기에, 지금 불안하고 불행하다면 내 사랑이 누군가의 사랑과 영혼에 달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사랑의 결말이 거대한 바닷속에 한갓 작은 몇 개의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참 서글프고 허전한 일이다. 큰 기대와 행복 속에서 사랑을 시작할 때에는 아무도 그 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거품만큼이나 가볍고 사라지기 쉬운 것, 손에 잡을 수조차 없이 멀어져 가는 물거품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은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과 같다.     

이별할 때에 생각할 것은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내 모습이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이후의 내 모습이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인어공주가 택한 ‘착한 일’이었다. 이별한 듯, 실패한 듯 보였으나 그렇게 해서 ‘영혼’을 얻을 수 있었던 인어공주.

온 마음으로 노력하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참아내고 있는 착한 일, 그렇게 해온 착한 일, 그런 착한 노력 덕분에 인어공주는 천사의 세상으로 올라가, 죽지 않는 영혼을 약속받았다.

그런 수많은 인어공주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이 세상은 누군가의 착한 일들과 견딤과 고통을 참음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바다를 이루어가고 있다. 바닷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은 바다의 품 안에서 다시 바다를 살아있게 만든다.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은 고통을 견디는 일, 착한 일을 이루어가는 일, 그리고 죽지 않는 영혼을 약속받는 일.     

얼마 전 우연히 보았던 동영상에서 함소원 씨와 어머니의 대화를 볼 수 있었다.

고생하고 견디고 참으며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해온 어머니에게 이제는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까이에서 함께 살자고 부탁했지만 어머니는 딸의 말을 외면했다.

그리고 다음 생에는 자신의 딸로 태어나달라는 말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그냥 나비로 태어나서 날아다니다가 이름 없이 죽고 싶어”


바닷속 물거품의 비상과 나비의 날갯짓은 어딘가 닮아있는 것 같다. 한없이 연약하고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듯 약해 보이는 생명력, 그러나 진짜 힘은 그 안에 담긴 영혼에 있는 것 아닐까.

평생을 힘껏 살아오셨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으리라, 아무 미련도 후회도 없이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착한 일을 해오신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나비처럼 훨훨 자유로우시길,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 꽃송이가 생각나지만, 이제는 나비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나도, 내 어머니도 나비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그저 자식일이면, 자식 옆이면, 자식이라면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상의 모든 위대한 어머니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나비처럼 훨훨 자유롭게 살아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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