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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20. 2020

기죽지 말고 쓰세요

요즘에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두 번째 출간을 앞두고 있었을 때, 혹은 어제처럼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음을 알렸을 때 저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축하인사와 함께,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셨어요.

잘 쓰는 분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분도, 혹은 쓰고 계신 분도, 글쓰기에 대해 어려움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저에게 글을 '쉽게' '빨리' 쓴다고 합니다. 네, 저는 그런 부분이 분명 있긴 해요.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모두 10분 내에 쓴 글들입니다.

며칠 두고 본들 더 이상 내 능력 안에서 고치거나 쓸 수 없음을 느낄 때 글을 올립니다. (그런 글 치고는 전문가가 보면 편집 본능을 일으키는, 참으로 고칠 부분이 많은 글일 것입니다.)

제가 글을 상대적으로 빨리 쓰는 편인 것은, 그런 식으로 '강화'된 결과입니다.

일단 제가 갖고 있는 글쓰기의 특징을 좀 생각해봤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계속' '고정적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는 일을 해왔어요.


첫째. 일기를 쓰든 신문을 만들던 숙제를 하든지, 독서감상문을 쓰던지, 남들은 과제를 받아서 할 일을 저는 심심해서 '놀이 삼아' '일삼아' 할 일 없어서 했거든요. 그래서 마음대로, 마음껏, 써봤다는 경험이 있어요.


둘째. 대학을 국어국문학과에 다녀서, 매일 글 쓰고 글 읽고 과제하고 평가받는 교육을 받았고요

(대학 다니며 학원강사로 중고등학교 논술지도를 했고요)


셋째. 졸업하고서는 방송작가로 일해서, 그땐 정말 '사람 취급 못 받는 기분'까지 느끼면서 모멸감을 견디며, 끊임없이 방송대본을 평가받으며, 선후배에게 눈치 받으면서 단련되는 글을 썼고요


넷째. 방송대본의 특징은 '말'로 표현되는 글이기 때문에, 말하듯이 술술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술술 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글을 그런 식으로 써야 하고요. 그런 글쓰기를 하면서 동시에 순발력 있게 빨리 써내야 하는 능력까지 강화된 것이죠.


다섯째.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일 육아일기, 독서일기, 개인적인 글을 썼고요.


여섯째. 독서논술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글을 가르치고 매일 머릿속에 글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동화를 의뢰받았을 때, 머릿속에 늘 있던 동화를 30분 이내에 써내기도 했습니다. 즉, 글을 쓰던지 안 쓰던지, 머릿속에 항상 글감이 있기 때문에, 쓰라고 하면 앉은자리에서 10분 이내에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어요.)


일곱째. 동화작가로 일하면서 매일 동화를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을 했고요. 이때 중요한 것은 방송작가,

동화작가의 경험은 의뢰한 곳으로부터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아야 하고, 수정 작업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도 글이 많이 다듬어지고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충분히 귀 기울이고 연단을 거칩니다.

여차하면 다 지우고 새로 써야 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끝에 가서는 더 이상 수정 없이 탈고를 마치는 단계까지 수십 번, 수백 번 연단을 거치는 겁니다.


여덟째. 아시다시피 브런치 작가로서. 독자들께 평가를 받고, 댓글이나 메일로 피드백을 받고요, 어떤 글에 어떤 피드백을 주시는지 겸허하게 들어요.


아홉째. 브런치를 통해 에세이 작가가 되고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책을 두 권 출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계속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과정을 보게 되었어요. 전문가인 출판사 편집자님이 '전문적이고 탁월한 솜씨로' 글을 작가보다 더 훌륭하게 가다듬고 덜어내고 만져주어요. 어떤 식으로 글이 배열되는지를 다시금 배우게 되는 거죠.

(세상의 모든 편집자님을 우러러봅니다. 감사합니다.)


열 번째. 그 모든 과정을 글로 기억하면서 지금 이 순간도 글을 씁니다. 매일이요.

그래서 생각해봐요, 누군들 매일 이렇게 글을 쓰면, 글을 웬만큼은 쓰겠거니, 오히려 저보다 더 능력이 특출 나다면 더 훌륭한 글을 쓰겠거니 생각합니다.


10가지의 특징을 아우르는 저의 특징이 있는데요,

저는 글에 기죽지 않아요. 제가 글을 못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작가일 때 선배들, PD들이 놀지 않거든요. 저의 글에 대해서 끊임없이 피드백을 줍니다. 그 상황에서 좋게, 곱게 말했을까요? 서류철 모서리로 머리만 얻어맞지 않았을 뿐이지 심장에는 수없이 많은 융단폭격이 가해졌고, 자존심, 자존감, 자만심? 이런 건 애초에 달나라로 갔어요.

'융단폭격'이 뭔지 아세요? 전쟁이 일어나면, 전투기가 폭탄을 싣고 가면서 공중에서 대규모 폭격을 쏟아부어요, 마치 바닥에 깔린 융단처럼 길 따라 쭈욱~ 쏟아붓는 거죠, 주변을 다 터트려버리는 '폭탄'을요. 폭죽이 아니고 폭탄이죠. 터지면 죽어요 그냥.

그 융단 폭격이 내 글을 본 누군가로부터 내 심장과 머리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것입니다.

그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은 거죠 제가.

유일한 자랑거리랄까요? 제가 여러 번 밝혔는데... '학교 앞에 가서 가방 장사나 하라는 말' 많이 들었다고요.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뭐라 하면 군소리 없이 듣고, 못쓰는 게 당연하니 계속 쓰고, 쓰다 보니 좀 나아진다 느껴지는 시점이 있었어요. 그러니 글을 쓰면서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적어도 다른 분들이 제대로 쓰자 싶으면, 꾸준히 쓴다면 저보다야 나은 글을 쓸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래 꾸준히 계속 썼다는 것이 지금의 강점이 된 것이고요.

그렇지 않고 이제 글 써보고 싶다... 생각만 갖고 계신 분들은 그 모든 과정을 비슷하게라도 겪어보지 않은 이상, 여러 번의 감정 기복과 자기 한계를 맞닥뜨리면서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되실 거예요.

너무 겁주는 거 아니죠? 제가?




"그들은 예컨대 <로키 산속을 걸으며> 같은 긴 여행담을 쓰면서 산의 높이라든지 사실과 통계, 호텔의 시설 등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관심을 갖기만 하면 언제라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만들려면 글은 개인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나'로부터. 즉 내가 알고 느낀 것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오로지 그런 글만 깊이와 재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 중에서.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세요.  뻔뻔하게, 한심하게, 한가하게, 나의 조잡하고 하찮은 표현이 온갖 진상을 부리는 어처구니없는 글을 매일 보면서 내가 어디까지 쓸 수 있나 보세요.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케이트를 타거나, 피아노를 배우거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할 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글쓰기도 기본기를 배워 어느 지점에 가서야 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이 자유자재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을 쓴 브렌다 유랜드 역시 이렇게 말합니다.

'퇴짜 통지에 기죽지 마라'

"내 모든 이야기의 진정한 의도는, 당신이 퇴짜 통지서를 받더라도 결코 기죽거나 좌절하지 말고, 성공한 작가들을 보면서 너무 겁내거나 소극적이 되지 말고, 오히려 당신 자신의 방식으로 계속 쓰게 하려는데 있다."


그리고 작가가 주는 위로를 느껴보세요.

"교육을 받았든 받지 못했든 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들도 위대한 사람이나 진짜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야기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106P)



융단 폭격을 받으며 써낸 책입니다. 그래도 살아남아서 책을 썼네요, 휴....

그러니, 어여삐 여기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발~~~


https://brunch.co.kr/@uprayer/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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