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글이 없는 요즘이다. 어떤 생각도 글로 남기고 싶지 않고 나의 일상을 글로 남기는 거에 이상한 어려움이 생겼다. 별생각 없이 쓰던 브런치의 글들이 조회수가 올라가고 구독자수도 올라가며 그들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버려서 그런가.
명확하게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글이 없는 최근이었는데, 글을 쓰려고 하면 늘 아빠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냥 나의 어린 시절을,
내 아빠를 글로 남기고 싶나 보다.
어린 시절부터 성격이 나와 너무 비슷해 와일드한 엄마와는 늘 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어릴 땐 혼났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고 그보다 더 컸을 때는 대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렇게 말이든 몸이든 늘 부딪히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한 번을 부딪힌 적이 없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자식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 그런 부모가 나의 아빠였다.
지금도 우리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는 자신에겐 그리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아빠는 나에게 너무 좋은 아빠였으니깐.
고등학교 1학년때였나. 전국적으로 눈이 엄청 내렸던 때가 있었다. 눈이 정말 내리지 않는 부산에도 폭설이 내렸고, 3월임에도 밤새 쌓인 눈은 학교를 가야 하는 나의 앞길을 막았다.
개근이 유행이었던 그 시절, 친구들은 쌓인 눈을 헤치고 차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걸어 걸어 높은 산에 있는 학교를 어떻게든 등교했고 나는 눈이 녹을 때까지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오라고 담임선생이 께서 연락을 하셨고, 어떻게 가냐며 걱정하고 있는 나에게 폭설로 출근하지 않았던 아빠는 데려다준다며 장갑을 꺼내 들었다.
이미 덩치는 아빠보다 컸던 나이만 어린 딸은 그렇게 아빠의 손을 잡고 눈이 쌓인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평소 차로 다니던 고가도로를 함께 걷고, 오르막을 한참 올라 도착한 학교.
아빠는 하교시간에 맞춰 온다며 얼른 교실로 들어가라 하더니 정말 학교가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린 아빠는 아침때와 같은 밝은 미소로 날 반겨줬다.
그 고가도로 길은 운전을 하는 요즘도 자주 다니는데 아주 가끔 그날의 아빠가 떠오른다.
학교 가기 싫다던 딸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함께 가자며 집을 나섰던 아빠. 운전하기 힘든 도로라 같이 걸어가자고 장갑을 끼던 아빠. 마치는 시간에 데리러 올 테니 얼른 학교를 들어가라던 아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32살의 나는
이 동네에 살 이유 하나 없지만 아빠 근처에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이 동네에 살고 있다.
가끔 아이와 손잡고 친정에 들를 때마다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는 아빠가 좋아서, 아이가 나가고 싶다 하며 주저 없이 손잡고 나가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여전히 다정한 그가 좋아서.
이기적 이게도 아직 부모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맴돌고 있는 철없는 나. 언제쯤 철이 들어 진짜 독립을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진짜 독립을 해 엄마 아빠 곁을 완전히 떠나는 날에도 아마 아빠는 아무도 없던 함께 걸러줬던 그때처럼, 눈 덮인 도로를 걸으며 내 손을 잡아줬던 그때처럼, 눈부시게 멋있던 그 미소를 지어줄게 분명하다. 그는 언제나 내게 다정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