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m 07.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다.
<보통의 존재> 이석원
사랑이란 두 글자의 함정
알아나가고 싶은 호기심,
첫 감촉을 통한 설렘,
함께하고 싶은 마음,
힘이 돼주고 싶은 애처로움,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는 스스로의 내면,
이후, 성장한 자신.
어느 연인의 사랑 스토리 같겠지만 아니다. 최근 봤던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느꼈던 사랑의 감정들이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의 크레이그 포스터 감독을 통해 그의 사랑을 전이받았다. 감독과 문어의 아름다운 연애 스토리를 볼 수 있었다. 그간 무심코 넘겼던 내 입 안의 작은 감흥은, 어느새 남몰래 엿본 사랑 이야기처럼 진하게 남았다. 어느 로맨틱 드라마나 영화보다 가슴 절절했다.
문어뿐만 아니라, 반려동물과의 교감은 언어 없이 이루어진다.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머무는 순간에 충실한다. 감독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그 존재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다.
도서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에서 저자 고든 리빙스턴도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사람의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때때로 겉모습과 말에 현혹되어, 정작 상대가 가진 진심과 추구하는 가치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사랑을 오해하고, 놓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는 착각을 낳기도 한다. 길가의 잡초도, 아가의 기저귀 냄새도, 연인의 방귀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 전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대신,
나는 책의 한 구절을 사랑한다.
나는 나에게 와닿는 장면을 사랑한다.
나는 그 사람의 특정한 모습이나 태도, 가치를 사랑한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된 것처럼
사물이나 대상에 내 시간과 의미를 부여한 순간, 사랑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내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작은 하나의 끌림이
어느새 내 삶을 차지해 버린 커다란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의 나를 사랑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머무는 사랑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는 동시에, 사실은 내 안의 결핍이나 욕망,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상대가 특별해서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 상대가 사라지면 남는 건 결국 '나'다. 그래서 사랑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인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가장 깊은 과정'이기도 하다.
사랑을 하면 기쁨보다 혼란이 먼저 찾아올 때가 있다. 상대는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했을까, 나는 왜 그 행동과 말에 상처받았을까. 상대에 의해 생겨난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기도 하다. 사랑은 그렇게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점점 깊어지고, 통하게 될 거라고 믿지만, 결국 사랑은 '서로가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채로 각자 머무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공유하려 애쓰는 대신, 각자의 시간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성숙한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너는 어떤 사람인지'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저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닌, 상대는 어떤 존재인지를 함께 알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너를 안다는 건,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날은 어떤 하루였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물론 감정을 표현하는 건 어렵다. 스스로도 모르는 마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먼저 알아보려 노력하고, 때로는 너도 먼저 알아봐 줄 때, 그 순간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다.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노력이야 말로 아름다운 사랑이다. 상대의 취향이나, 거리감마저도 인정하는 것. 가까워지기 애쓰기보다, 멀어지지 않도록 머무는 것. 상대에 대한 배려이자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문어가 몸을 숨기듯, 나도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다가가듯, 문어도 다가오는 때가 있다.
그 어느 때든, 그 자리 그대로 내 곁에 머무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존재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하고 있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외로움이나 허무함이 아니라 '나'이다. 너로 시작했지만 나로 끝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내가 품었던 기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통해, 내가 채우고 싶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했던 만큼 나를 더 이해하게 되고, 자신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된다.
오래된 사랑이 없어진 것 같지만,
사랑은 언젠가 떠나는 감정이 아니라,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고 있다.
너로부터 시작된 이해는 나로 이어지고,
결국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정교하게 재단되거나, 내가 원하는 무게로 저울질하는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본 사랑을, 내 마음의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그것이 너에 대한 존중이자, 나 자신을 아끼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