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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rbandaddy Jun 07. 2018

아이의 체중변화는 꼭 언급해야 하는가?

아이를 평가하는 '코멘트'에서 알아가기 위한 '질문'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 씨와 B 씨가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난 뒤 A 씨는 B 씨에게 전후 맥락 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근데 살 좀 쪘네?

이다음 대화가 부드럽게 연결되기 위한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그중 생각나는 것만 얘기해보자면 A 씨와 B 씨가 친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 업무상으로 한두 번 본 사이, 또는 상하 관계에서 이런 화법이 진행되거나, 몇 번 만나지 않은 이성에게 위의 질문을 던졌다간 분위기가 애매해지기 십상이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듣는다면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친한 사이에서도 감정에 스크래치가 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상대방의 관심사가 살이 찌는 것에 있는지 빠지는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살이 빠지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긴 하나 살이 찌는 것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꽤 많다. 찌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 살이 쪘다고 얘기를 하면 대화의 주제는 술술 풀리지만, 동일한 말을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 한다면 얼른 다른 화제를 찾는 편이 낫다.


체중 변화를 가져온 요인이 내/외부의 긍정적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부정적 요인 때문인지 아는 것도 하나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외부 상황으로 급작스레 살이 빠진 경우, 살이 빠졌다는 언급은 함께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촉매제가 되기도 하지만 후에 당사자가 체중 감소를 더욱 걱정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주제는 적합한 상황에서 상대를 고려하며 정교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또는 아예 안 하는 게 나은데), 흔히 명절 때가 되면 뉴스에 나오는  '명절에 듣기 싫은 잔소리'에 종종 언급되는 주제들이 또 다른 좋은 예시일 수 있겠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 읽었던 책 중에 '프랑스 아이처럼'이 있다. 내용 전체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당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한 문구가 있었다.

아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

물론 책의 맥락에서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여 자신이 생각하고 그들이 스스로 닥친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난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아무리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의 인격 자체를 존중하는 자세는 일관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실제 삶의 적용에 있어서는 어렵고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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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대화에 오르내리는 주제 중 하나는 '아이가 밥을 잘 먹는가?', 즉 아이의 체중 변화이다. 밥을 먹이는 것이 육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실로 이 주제의 스펙트럼은 넓다. 처음 모유수유(또는 분유) - 초기 - 중기- 후기 이유식 - 유아식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세스만 해도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고, 시중에 이와 관련된 책 역시 많이 나와있다. 밥을 먹는 것과 밀접한 아이의 체중변화는 두말할 여지없이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주요한 요소이며 대화의 주제이다.

가장 걱정이 안 되는 케이스라면 '우리 아이는 딱 적당한 양과 속도로 맛있게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요'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너무 안 먹어서 걱정' 또는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의 상태에 빠지는 것 같다.  나 역시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밥을 먹이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어떤 날은 '이렇게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픈가?'싶을 정도로 밥을 안 먹어 계속 머릿속에 걱정이 맴돌 때도 있다. 아이가 특정 킬로수에 정체되어있는 상황을 지켜보며 내가 영양을 제대로 공급해 주고 있는 건가 하고 되뇐 때도 많았다.


이러한 걱정은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영유가 검진 결과서에 적힌 백분율을 보며 심화되기도 하고 누그러지기도 한다. 참고용으로 배포되는 결과서를 무슨 중요한 성적표 마냥 받아 들고 보는 내 모습을 보며 '알아서 잘 크겠지'라고 혼잣말하며 잊어버린다. 아이들은 배고프면 알아서 먹는다고, 모든 아이들이 다 똑같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 그냥 최선을 다해 먹이기만 하자고 다짐하고 머릿속을 비운다.


아기수첩 뒤에 붙어있는 신장/체중 도표


하지만, 그리 가깝지 않은 지인들 또는 모르는 분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이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불거진다. '지난번보다 말랐네? 얼굴 살이 빠진 것 같아', '아이가 살이 있네? 잘 먹나 봐요' 등등의 언급이 시작되면 아이를 소개할 기회를 갖기보단 아이의 상황을 변명하는 것으로 대화의 주제가 바뀌게 된다. 그럼 애써 내려놓았던 체중에 대한 생각은 다시 머리 한 구석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있었다. 나 역시 다른 부모와 대화할 때, 아이를 소개받았을 때 위와 같은 말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았나? 대화의 주제가 아이의 체중에 많이 집중되진 않았었나? 무심코 내가 뱉었던 말이 다른 부모에게는 큰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가 듣지 못한다고, 반박할 수 없다고 아이의 겉보기(또는 외모)를 평가하는 발언을 쉽게 하진 않았나 곱씹어 보았다.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겠다고 다짐했으면서 말이다.


아이의 겉보기를 평가하는 '코멘트' 성 질문보다는 아이의 행위나 성향으로부터 파생되는 '질문'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겠다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무엇이고 요즘에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지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과일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책의 제목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과 함께 상대 부모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조심스레 알아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적시에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꼭 육아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뿐 아니라 업무나 회의, 협상의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증폭하거나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또 나에게 좋은 질문을 해주셨던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컸다. 내가 앞으로 갈고닦아야 할 중요한 무기인 '좋은 질문하기'. 육아를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 '질문하기'의 스킬을 갈고닦는다면, 나중에 현업에 복귀해서도  업무를 하는 중에도 귀중하게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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