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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Oct 06. 2020

결혼은 선택일까 운명일까

연애는 곧잘 했지만 결혼은 남 이야기였다. 화려한 싱글은 아니어도 편안한 싱글을 원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이혼 가정으로 평범하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충분히 행복했지만 외로운 날도 있었다. 상처받지 않은 척했지만 상처받은 날도 많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는 대문호의 말처럼 여러 이유가 있었다. 남들과 같은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 자랐다면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는 삶을 꿈 꿔봤거나, 계획했거나, 좀 더 빨리 시작했을까.


나는 비혼주의자라 떠들고 다니지 않았음에도 사람들은 비혼으로 보았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돌릴 때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대기업 광고대행사를 오래 다니며 밖에선 화려해 보이는 회사생활을 했고, 여가엔 자기개발과 자기계발에 힘썼으며 취미도 많았다. 여름엔 수상레저를, 겨울엔 스키를 타러 다녔다. 때론 글을 쓴다며, 때론 사진을 찍는다며 여행을 떠났고, 일 년에 두 번은 해외로 나갔다. 명품을 즐기진 않았지만 쇼핑을 종종 했고, 친구나 동료와 어울려 술을 늦게까지 마셨다. 누구에게도 할 말은 하고 살던 나였고, 누가 봐도 성격 좀 있는 쎈 언니였다. 


그러나 유독 한 선배가 자주 “의외로 니가 먼저 결혼할 것 같아. 넌 결혼하면 재미있게 살 거야.”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은 나의 결혼은 상상할 수 없다며 웃으며 넘겼다. 사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리라. 


“넌 결혼 생각 없어?”

“난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냥 나대로 살래.”

이랬던 내가 ‘덜컥’ 결혼했다. 역시 삶을 살며 ‘절대’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절대’라는 확신에 찬 믿음이나 결의, 혹은 확률 따윈 없다. 


과연 결혼은 선택일까 운명일까. 


그와 나의 첫 만남은 회사 출장지에서였다. 매우 거센 태풍이 온 월요일 아침이었다. 회사 업무로 두세 번 전화 통화를 한 상태였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여 시답지 않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리고 한 달 뒤, 이 남자와 결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라고 해야 할지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기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결혼할 사람은 만나면 그냥 알아.” “결혼할 사람 뒤에는 후광이 있어.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라고 말할 때마다 비웃었던 나였는데.  


모든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진 않지만, 나에게 결혼은 사랑이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해도 죽을 만큼 힘든 일이 생기는 게 결혼 아니던가.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닌데 연애도 전에 결혼을 생각하다니. 요즘도 나는 그와 이 이유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결혼이 선택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선택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방법으로,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나는 혼자였을 때 보다 둘이 더 행복하고, 둘이었을 때 보다 셋인 지금 더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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