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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쌤 Sep 25. 2019

꼭 파닉스부터 시작해야 하나?

영알못 딸램이 2개월 만에 원서 200권 읽기까지  



미국에 사는 동생네 2주간 방문하고 돌아왔다. 남편의 출장지가 동생네 동네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생각지 않게 다녀오게 되었다. 처음으로 미국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공부를 아이에게 시키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언어를 배우는지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생의 아들은 만 6살이고 초등학교 1학년이다. 태어난 지 몇 개월 안되어서 미국으로 갔는데, 동생이 철저히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글책을 열심히 읽어주어서 한국어가 영어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어느 날 조카의 숙제를 살펴보는데 동생이 파닉스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해주었다. 파닉스를 배우는 조카가 어느 날 자기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보면서 “엄마, 왜 ‘Christian school’은 왜 츄리스천 스츌이 아니에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파닉스를 배우는데 ch 음가를 /취/로 배웠으니 아이에게는 “Christian school은 츄리스천 스츌”이 아닌 게 궁금할 수밖에.


규칙을 배우긴 했지만 영어에서 파닉스가 적용되는 단어가 대략 전체의 70%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조카의 ‘츄리스천 스츌’ 같은 에피소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아이들도 그런 단어들은 외울 수 있도록 ‘Lightning words’ 같은 숙제를 내준다. ‘Lightning words’는 30-40여 개의 단어를 무작위로 배열해 놓고 읽는 시간을 재서 빠른 시간 안에 읽어내도록 연습시키는 숙제다.

파닉스 워크시트. 구글에서 phonics worksheet라고 치면 수없이 나온다. 난 귀찮아서 안 하겠지만..;;; 책만 잘 읽어줘도 귀찮은 일이 엄청 줄어든다는 게 fact!

위키백과 정의에 따르면 파닉스는 “파닉스(Phonics)는 단어가 가진 소리, 발음을 배우는 교수법”이다. 즉, 글씨와 소리와의 관계를 파악해서 글씨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C는 /ㅋ/, A는 /애/, T는 /ㅌ/ 소리니까 조합하면 /캩/으로 발음이 난다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렇게 원리를 배우고 나면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원리만 가르쳐주면 글씨를 읽게 되는 성과가 바로 보이기 때문에 유아 대상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에선 일단 파닉스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파닉스가 널리 퍼지게 된 것도 유명 유초등 영어 기관에서 “우리 아이를 영어 영재로 키워준다”며 아이들에게 파닉스부터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기관 홍보글에 따르면 파닉스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게 1990년대 초반이니 지금 초등학교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파닉스를 배운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파닉스라는 것을 TESOL를 할 때야 알게 되었다. 그럼 나는 파닉스 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영어노래를 들으며 영어에 빠지게 된 나는 노래를 듣고 가사를 외우면서 자연스럽게 깨우쳤던 것 같다. 내 또래 대부분의 사람들도 선생님이 읽어주는 걸 듣고 알게 되었지, 파닉스를 따로 배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닉스를 따로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영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유초등 영어학원에선 파닉스에 집착할까?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파닉스는 빠른 시간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거의 무조건 파닉스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 학원 업계에선 '빠르고' '눈에 보이는' 성과라는 게 중요하다. 안그러면 바로 경쟁업체에게 고객을 빼앗기니 말이다. 유아 영어학원을 다닌 애들 중에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2년까지 파닉스를 배우다 오는 애들이 있다.  다니는 학원에서 원하는 성과가 안나는 것 같아 학원을 옮기다가 또는 소문만 듣고 유명하다는 영어학원을 전전하다가 그렇게 된다. 학원들 모두, 시작이 파닉스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파닉스는 글자를 읽는 것을 가르치는 것인데, 영어로 말도 못 하고 듣기도 안 되는 아이에게 글씨부터 가르친다는 게 말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애가 아직 말도 못 하는데 기역 니은을 가르치는 엄마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도 선생님의 말을 다 이해하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킨더(Kinder ∙ 우리나라 유치원과 비슷한 과정. 미국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가 아니라 킨더부터 의무교육에 포함된다.)에서 파닉스를 가르친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아 영어학원들에서는 듣기도 안 되는 애들에게 글씨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파닉스 가르치는 것을 완전히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파닉스가 필요한 시기가 있고 그때에 맞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아이들은 파닉스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나는 아이에게 따로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책을 읽어주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가 글씨를 깨우쳤고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게 만 4세 정도였다. 글씨를 쓰는 것도 비슷했다. 읽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기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는데, 문장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만 5세 중후반 무렵이었다. 나는 영어도 똑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내 딸에게 파닉스를 가르치지 않고 책만 읽어주었고, 현재 아이는 “Dad got on the box. He put on the cap. It did not fit.” 정도의 문장을 읽어낸다. (듣기 수준은 훨씬 높다. 오늘 아침에도 <Curious George>를 3권 읽어주었는데 이해를 위한 설명이나 해석을 별도로 하지 않고 읽기만 하는데 어려워하지 않았다. AR2.6 정도니 미국 초등학교 2학년 6개월 차 학생이 읽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아침에 읽은 Curious George 시리즈 중 하나인데 글밥이 꽤 많다.


파닉스를 가르쳤다면 훨씬 오래전에 현 읽는 수준의 문장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쉬운 리더스북은 굳이 내가 읽어주지 않아도 되고 편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파닉스를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이 학습으로 가야 하고, 아이는 영어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사실, 영어책을 읽어주기 시작할 때 파닉스를 가르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있던 한국에서 개발된 파닉스 교재를 아이와 함께 펼쳐 보았다. 그러나 며칠이 안되어서 아이는 파닉스 책 대신 그림책을 펼쳤다. CVC (man 같은 자음+모음+자음 조합의 단어) 위주의 단어만 늘어놓은 책이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파닉스를 포기하고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에 집중했다. 파닉스는 빨리 아이가 영어 책을 혼자 읽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욕구를 누르고 딸램에게 영어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지 5개월 차에 들어섰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냥 본문에 충실하게 책을 읽어주는데 갑자기 딸램이 한 마디 했다.


“엄마, K로 시작하는데 왜 발음이 ㅋ로 시작하지 않아?” 오~ 예리한데~ “K와 N이 붙어있으면 K는 소리가 없어져. 그래서 N 발음만 남거든. Know, Knife 이런 단어들이 다 그래.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어. 너 좋아하는 Knuffle Bunny 책 있지? Knuffle은 네덜란드 말이라 크너플 이렇게 읽기도 해.”  


이때 잠깐 파닉스를 집중적으로 가르칠까 생각했으나, 차라리 이렇게 질문할 때 알려주는 게 아이에겐 훨씬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책 읽기에만 집중했고 이제 영어책을 읽은 지 이제 만 6개월이 되었다. 아이는 전보다 단어에 관심을 보이고 소리 내서 읽는 것에 관심을 보인다. 전엔 내가 리더스북을 읽어줄 때 자기도 따라서 읽는 흉내를 냈는데 진짜로 이제는 자기가 읽으려고 한다. 이때가 파닉스를 하기 좋은 시점이다. 아이가 영어 소리에 익숙해지고 읽고자 하는 욕구를 보이기 시작할 때 파닉스를 가르치면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책장 한구석에 밀어둔 <I can read!>의 파닉스 교재인 <The Berenstein Bears>를 꺼내놓았다. 다행히 크게 거부감 없이 첫 책을 읽었다. 이 교재의 장점은 학습을 위한 만들어진 책이지만, 이야기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파닉스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다. ORT의 파닉스도 좋은 교재다. 이야기 측면에서는 ORT가 더 자연스러워서 아이가 더 빠져드는 느낌이다. (나는 ORT신봉자인가ㅎㅎ ORT에서 받은 건 1도 없다;)


미국과 한국의 파닉스 교육에 관한 차이점을 하나 더 든다면, 한국의 파닉스 교육은 자음에 중점을 두지만 미국의 파닉스 교육은 모음에 훨씬 더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I can read!>의 파닉스 교재인 <The Berenstein Bears>의 구성을 보면 Short a/e/i/o/u Long a/e/i/o/u∙oo/로 되어있다. 모음이 훨씬 중요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딸램이 어린이집 다닐 때 가져왔던 특별활동 영어교재도 모음보다는 자음에 훨씬 비중을 많이 두고 있었다. 하지만 파닉스 교육에서 중요한 건 모음이다. 한국 사람들이 말할 때 실수를 많이 하는 지점도 모음 발음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F와 P, R과 L 등은 하도 많이 들어서 얼추 구분하여 발음하는데 모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파닉스가 필요한 건 아이들보다는 성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찾아보면 파닉스 노래도 많고, 워크시트도 많다. 파닉스를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로는 starfall.com을 많이들 추천한다. 구글에서 starfall을 치면 바로 starfall phonics가 검색어로 뜬다. 미국 학교들에서도 starfall 자료를 많이 이용한다. 유튜브에서는 phonics song을 치면 관련 동영상이 많이 검색되는데( <leapfrog letter factory>가 많이 추천되는 시리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uOE48X3-MM) 모음을 집중해서 가르치고 싶으면 Phonics vowel song으로 검색하는 게 좋다.

sightwordsgame.com에 가면 학년별 사이트 워드 리스트가 있다.

파닉스를 어느 정도 가르친 후엔 사이트 워드(Sight Words ∙ 빈번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파닉스 규칙을 따지지 않고 통째로 외워서 눈으로 보자마자 읽을 수 있게 하는 단어)도 목록을 인쇄해서 읽는 연습을 시킨다. 그러면 파닉스는 거의 끝내는 셈이다. https://www.sightwordsgame.com/sight-words-list/ 에 가면 리스트가 있으니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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