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Oct 03. 2020

이른 아침,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암이 두렵다.

'작년 오늘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 물 한잔,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나는 습관처럼 작년 일기장을 책장에서 꺼내본다.


2019년 10월 3일. 날씨는 맑음.


외할아버지께서 막내 이모가 8살 되던 해에 돌아가시면서 나는 이모들과 함께 자랐다. 나에게 언니, 친구, 선생님, 엄마처럼 곁을 지켜준 세명의 이모들. 그중 나와 8살 차이인 막내 이모는 내가 시집을 가기 전까지 많은 부면에서 어른이 되는 법을 알려준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늘 건강하고 활력에 넘쳤던 막내 이모가 작년 봄, 암에 걸렸다. 충격에 빠진 친정 가족들은 다들 검사를 받았고 나 역시 친정엄마와 함께 nk세포 검사를 받았다.


이모.... 이모.... 우리 막내 이모...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이모는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하는 이모를 도둑질해가는 이모부가 그 당시에는 미웠다. 하지만 여동생이 없었던 막내 이모부는 나를 예뻐해 주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가족이 되어갔다. 딩크 부부인 이모가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제주에서 더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예상치 못한 출혈, 검사 결과 자궁암 1기. 수술하면 괜찮다고 의사는 말했지만 이모부는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며 큰 병원을 찾았다.


초기일 것으로만 알았는데 "자궁암 3기" 항암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무한 긍정적인 이모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늘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작년 10월 이모의 암 치료가 마무리되면서 제주에 있는 이모 식구들이 육지로 와 함께 가족여행을 갔다. 어릴 때 자랐던 시골집 앞에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20년 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모, 다음엔 삼촌 가족들까지 다 모이면 좋겠어~^^ 이모가 견뎌줘서 너무 고마워."

"가족들에게 내가 고맙지~ 다음번에 또 모이면 좋겠다."


일기장에 첨부된 여러 장의 사진들 중 친정 아빠의 불편한 왼손에 팔짱 끼고 웃고 있는 이모의 모습을 보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 후 내 시야가 뿌해지면서 뜨겁고 굵은 물방울들이 쉼 없이 턱끝을 향해 흘러내렸다.


일기장을 조용히 덮었다. 아직 깨지 않은 가족들을 위해 조용히 거실로 나와 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모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당당'이라고 톡방에 수술 전 셀카를 찍어 공유했던 긍정 이모. 그런 이모가 저번 달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수술 후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가 시댁에서 추석을 보내던 중, 이모의 검사 결과를 들었다. 이미 간, 방광 여기저기 암세포가 전이되었다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펑펑 우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었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누군가 말해 줄 것만 같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전이도 전이지만 수술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까~'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이모의 카톡 프사를 열었다. 디데이 카운트에는 강아지들과 함께한 시간, 그리고 이모부와 결혼한 지 7300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계산을 해보니 결혼한 지 20년.


- 이모~ 프사에 보니 결혼기념일이네? 축하해. -


'많이 아픈 건가?' 1이 없어졌는데도 답이 없었다.

1시간 가까이 지나 장문의 문자가 도착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조카들을 위해 이겨낼 거라고, 할머니와 엄마가 이모 때문에 몸이 상할까 더 걱정이라며 나에게 이것저것 챙겨달라는 부탁이 적혀있었다. 하루아침에 몸을 점령한 암덩어리가 사라지는 기적은 원치 않는다며, 견딜 수 있는 힘만 하느님이 주셨으면 좋겠다고...


티슈를 양껏 꺼내어 눈을 막아보았지만 세상엔 막지 못하는 눈물이 있다는 걸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사는 동안 암이라는 병을 주변에서 자주 듣고 살았다. 그 소식을 들을 때면 안타까웠지 손끝이 떨릴 만큼 두렵지는 않았따. 처음 이모가 암이란 소식을 전했을 때도 수술하면 다 괜찮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암이 너무나 두렵다.'


한참을 울고 나서 이모에게 답문을 보내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이모를 만나러 가겠노라고... 그러니 제발 좋은 생각만 해주라고... 그리고 그리고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당장이라도 이모 곁으로 달려가 꼭 안아주고 싶다. 마지막 우리가 만났을 때 내가 안았던 이모는 뼈 마디마디가 잡힐 정도로 왜소했다. '나는 왜 아픈 이모를 더 챙기지 못했을까... 더 자주 전화해서 안부를 물을 걸... 많이 웃어줄 걸~ 후회가 파도처럼 가슴으로 밀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 이모가 잘못될 것이라는 걱정, 염려, 절망, 두려움은 저만치 밀쳐 두기로 했다. 내가 이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눈물은 예고 없이 앞으로도 여러 번 터져 나올 테지만 말이다.


내게 두려운 하루하루, 24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그리고 감사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