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gancia Mar 05. 2021

서열 4위가 되었다

9년 만에 반려동물을 들이면서...

어린 날을 떠올려보면 나는 항상 동물들과 함께였다.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품에 안겨있던 앙고라토끼들은 날이면 날마다 토끼장을 탈출했고 그 토끼들을 잡느라 엄마와 나는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즈음에 키웠던 셰퍼드가 강아지를 낳을 때 아빠는 밤새 그 아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들 곁에서 나 역시 뒹굴며 놀았던 사진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동물들에게 무한 사랑을 주셨던 부모님 덕분에 내 유년시절은 반려동물과 함께였다. 강아지와 고양이들과 뒹굴며 나는 또 다른 사랑을 배워나갔으니까... 다만 어린 날 '죽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것도 바로 '반려동물' 때문이었다. 정들었던 그들을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생의 목적을 다 한 녀석이 반평생을 덮고 자던 담요에 쌓여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너무도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제까지 내 손가락을 물고 빨며 애교를 부렸던 녀석을 아빠가 앞마당에 묻었을 때 오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도 집엔 고양이 3마리, 강아지 2마리가 함께 했으니 이건 tv 동물농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 가족은 각각 주어진 임무에 따라 사료를 챙기고 씻기고 털 말리고 배변을 치우고 놀아주었다.  남동생은  무한 사랑으로 그들을 예뻐했다면 나는 이 녀석들이 사고를 쳤을 때 군기를 잡는 군기반장이었다. 부모님의 말은 듣지 않던 아이들이 내 눈빛에  꼬리를 내렸다. 나는 이 집에서 서열 1위쯤 되었을 것이다.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강아지와 고양이와 멀어져 있었을 때는 바로 육아를 하는 시기였다. 아이를 돌보면서 도저히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가끔씩 친정에 가서 강아지 고양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던 아이는 말을 배우면서부터 집에 동물을 키우자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내 나름대로 아들에게 테스트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여러 동물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비록 크기는 작긴 했지만 달팽이, 구피, 거북이,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메뚜기, 올챙이, 매미.. 유충들이 번데기가 되고 성충이 되는 과정들을 아이가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오직 아들을 위해서 내 성격상 손도 못 대는 곤충들을 장갑 끼고 소리 꽥꽥 질러가며 잡아왔었더랬다.


처음엔 신기해하던 아들은 며칠 후 관심이 시들해졌고 밥과 톱밥 물 갈아주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롯이 죽을 때까지 이들은 내 몫이 된 것이다. 심지어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죽었을 때 나는 종이로 된 관을 접어 아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우리 집에 동물이 오면 죽을 때까지 키워줘야 하는 거야. 평생 책임져야 하는 거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모두 다 엄마와 같은 생각일 거야. 엄마는 네가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었을 때 그때 강아지든 고양이든 집으로 데려올 거야. 알겠지?"

"알겠어요. 그런데 나도 이제 잘할 수 있어요."


옆에서 나와 아들의 대화를 듣던 남편은 이제 때가 된 거라고 생각이 되었나 보다. 아이와 무슨 은밀한 거래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눈이 부셨던 금요일 오후 우리 집엔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왕 키우는 거 이제 아이도 9살이고 충분히 봐줄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 말고 아들 믿어봐요."


이 집에 이제 자기 집이라는 것을 느낌적 느낌으로 알아차린 강아지는 아들의 품에 쏙 들어가 불쌍한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무 간절히 원하는 두 남자 덕분에 나는 이 아이를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였다. 울며 겨자 먹기란 이런 걸까? 배변 훈련이 되지 않은 강아지가 거실에 깔아놓은 카펫과 이불에 실수를 한 탓에 온 지 이틀 만에 세 번의 이불빨래를 해야 했다. '그래 아직 태어난 지 7개월밖에 안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 예쁘게 봐주려고 이름을 불렀으나  이 녀석은 나를 대놓고 무시했다.


남편이 발 곁에서 잠들었다가 같이 깨서 남편과 아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리고, 장난감을 물고 오는 녀석~ 정작 밥을 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패드를 갈아주고 강아지 집을 청소해 주는 나에게는 찬바람이 씽씽이었다. 이름을 불러도 휙 돌아서는 강아지에게 왜 내가 이렇게 서운함을 느끼는 건지... 그러니까 친정집에 살 때 서열 1위였던 내 위치가 갑자기 서열 4위가 되는 순간이랄까? 남편이 회사에 가고 아들이 학교에 가 있을 동안 나는 진지하게 강아지 집 옆에서 말을 늘어놓았다.


"난 널 끝까지 책임질 거야. 그러니까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응?"


강아지에게 부드럽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지만 나를 외면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고  돌봐줄 가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시간. 이젠 손을 내밀지 않기로 했다. 왠지 내가 손을 내밀면 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 같았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기다리자.'생각지도 않았던 순간 나는 서열 4위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서열 3위 강아지와 서열 4위는 대립 중이다. 서열 4위는 고심하고 있다. 우리가 온기를 나눌 방법을 말이다. 적어도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해야 할 가족이기에...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 하지만... 나 어떻게 안 되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늘 시작점에 서 있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