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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Apr 18. 2021

기차를타고서... <단편 2>

그림을 묘사하여소설 쓰기

https://brunch.co.kr/@uriol9l/194

<단편 1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


올리비아는 멀어져 가는 집들을 바라보았다. 반쯤 내려온  블라인드 너머로  집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마을로 이어진 커다란 석조 다리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풍경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비로소 시선을 거두었다. 불규칙했던 심장박동이 기차의 일정한 흔들림에 차츰 안정이 찾아갔다. 깊게 숨을 쉬었을 때 오래된 모직 소파의 냄새가 쾌쾌 묵은 먼지와 함께 폐까지 가득 찼지만 뇌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가 앉은자리에서 네 좌석 떨어진 곳에 불곰을 닮은 남자가 빵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잠들어 있었다. 앞자리에 다리까지 올려놓고 푹 잠든 모습이 마치 자신의 집처럼 편안해 보였다. 자신도 저 남자처럼 편안하게 이 여행을 즐기게 될 수 있을까? 그녀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득히 먼 산 위로 노을빛이 아스라이 남아, 산과 들 나무들의 형체가 하나하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잠시 후 기차 안의 조명이 노란빛을 뿜어내었다. 올리비아는 좌석 아래 놓아둔 커다란 가방에서 책 두 권을 꺼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아버지의 일기장이었다. 변색된 가죽 표지 아래에 '올리버'라는 아버지의 이름을 그녀는 한참이나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5년 전까지 아버지는 이 일기장에 자신의 삶의 조각들을 모으셨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다른 집으로 팔려간 여동생의 이야기였다. 그리움이 가슴에 켜켜이 쌓여 딸의 이름까지도 여동생의 이름과 같은 '올리비아'로 지은 아버지. '살아생전 그토록 찾고 싶었던 여동생을 한 번이라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는 딸을 보며 여동생의 눈동자와 똑같다고 말씀하셨었다. 아버지를 떠올리니 그녀의 에메랄드 색 녹안이 금세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조용히 말을 건네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그리던 올리비아 고모를 오늘 제가 만나러 가고 있어요.' 


펼쳤던 아버지의 일기장을 덮고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오래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만남이 그녀 앞에 펼쳐지는 듯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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