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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Jun 22. 2021

나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어촌 마을에서 뚝 떨어진 산비탈에는 오랜만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하늘색 지붕은 노을빛을 받아 붉은빛이 감돌았지만 그 누구도 그 빛깔을 보는 이는 없었다. 창호지를 대충 발라 누렇게 뜬 방문 틈으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그 소리가 시발점이었는지 '아이고아이고'하는 곡소리가 작은 집을 가득 채웠다. 나는 대문 가까이에서 아빠의 손을 꼭 잡고서 마당에 묶여있는 누렁이의 눈만 뚫어지게 볼 뿐이었다.


"아빠. 사람들이 왜 울어요?"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까..."


7살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맞이한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픔도 안타까움도 느낄 수 없었다. 나보다 묶인 누렁이의 큰 눈이 더 슬퍼 보였다. 자신의 밥줄이 끊긴 것을 안 건지 누군가 다가와 찌그러진 냄비에 사료를 줘도 녀석은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할머니.  증조할머니는 가족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분이셨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증조할머니 결혼 후 3년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건넛마을에서 둘째 부인을 데려오셨다. 첩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본처인 증조할머니께서는 아들 셋을 낳았다. 둘째 아내가 단 한 번도 잉태하지 못했으니 동네 사람들은 당연히 쫓겨 날것이라며 뒤에서 수군덕거렸을 테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이 데려온 둘째 부인을 거두셨고 그분은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세 아들을 맡아 키우셨다. 훗날 셋째 아들인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그분은 불쌍히 여겨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도 끝까지 보살피셨다. 가족의 사연은 내가 청소년기에 들었지만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그때는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었겠는가? 그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왔을 뿐이었다.


30년 전, 증조할머니의 장례는 집에서 치러졌다. tv 만화에 드라큘라가 누워있던 화려한 관에 들어갈 것이라 상상했지만 내가 태어나 처음 본 관은 볼품없는 직사각형 나무 상자였다. 다듬어지지 않는 관의 모서리가 관을 옮기던 아저씨 옷의 실을 잡아 뜯었다. 나는 속으로 '관 속에서 증조할머니는 허리를 쫘악 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슬픔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내 가슴을 관통했다. 얼굴이 가려진 증조할머니가 반듯하게 누운 관 뚜껑을 닫힐 때였다. 무엇이 그 방으로 나를 이끌었는지 달려가 못과 망치를 들고 있는 아저씨들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 안돼요. 안돼요. 못 박지 말아요. 그만해요." 나는 표면이 거친 관에 여린 살이 쓸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팔로 관을 안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렀다. 7살 여자아이의 절규에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는 듯했다. 증조할머니와 나 사이에 어떤 추억도 없었다. 하지만 그 좁은 관에 반듯하게 누운 여인의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는 생각이... 더는 굽은 허리로 누렁이의 밥을 챙겨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럽고 또 서러워 울었다. 누군가가 내 몸을 안아 방 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증조할머니를 불렀다.


"못 박지 말아요. 안돼요. 싫어요." 쉽게 진정되지 않았던 나는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딸꾹질을 하며 콧물과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증조할머니와의 처절한 이별이었다.




"엄마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흙으로 돌아간단다. 모든 동물식물들은 죽으면 흙이 되어버리고 말아. 사람도 마찬가지야."

"영영 볼 수 없는 거네요."

"다행히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어.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추억할 수 있지."


엄마는 왜 내게 사람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지상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을까? 지극히 '죽음'을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어린 내게 이야기해 주셨다. 어른이 될 때까지 수많은 죽음을 직면할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께서 해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의인이 죽으면 영원히 행복한 곳으로 간다는 희망도 악인은 영원한 고초를 겪는다는 막연한 두려움도 내게는 없었다. 단지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과정'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다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내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게 굳혀져 갔다.


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는 날이 짧고 괴로움과 고통만 가득하다고... 꽃처럼 잠시 피어났다가 시들어 버린다고-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뿐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내가 흙으로 돌아가 몸을 뉜 그곳에 초록 풀과 들꽃들이 무성히 났으면 좋겠다. 꽃들이 향기를 내뿜으며 벌과 나비를 부르는 곳.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놓은 곳.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얼굴에 눈물보다 미소가 지어지길...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설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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