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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r 23. 2023

위기의 옆집 부부

전지적 이웃 시점


예로부터 인생의 오복이라는 말을 사람들은 자주 썼다. 적당한 부를 가지고 건강하게 장수하여 평온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 나는 이 오복 중에 하나를 더 넣고 싶다. 바로 '이웃 복'

3년 전, 층간 소음의 끝판왕이었던 옆집이 이사를 가고 우리 집은 비로소 진정한 평온을 찾았다.


"집이 이렇게 조용한지 미처 몰랐네. 옆집 곧 이사 오겠지?"

"누가 오든 전보다는 나을 거예요. 나는 걱정 1도 안 해."


3개월간 빈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대로 좀 더 침묵을 이어지면 좋겠다는 우리의 바람과 달리 인테리어 업자들이 들이닥쳤다. 인부들을 뒤따라 오신 아주머니는 미소가 온화한 분이셨다. '설마 저분인가?' 


"안녕하세요. 리모델링하시나 봐요?"

"네. 도배랑 벽지, 주방만 하는 거라 금방 끝날 거예요."

"아~ 이사 오시는 분이셔요?"

"제가 아니라 저희 딸이요. 애들이 아직 어리고 강아지들도 있어서 좀 시끄러울 텐데 이해 좀 해주세요."

"저희 집도 아이 있는걸요. 괜찮아요. 그럼 수고하세요."


그날 저녁 남편에게 드디어 우리도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며 떠들어댔다. 리모델링이 끝나고 우리 가족은 이사 온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20대 초반인 임산부와 5살 연상이라는 남편. 그리고 3살 된 남자아이와 강아지들. 이사 떡을 돌리는 젊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벨을 누르라고 말해주었다. 주말부부라 혹시 남편이 없을 때 진통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둘째가 태어나고 돌이 될 무렵까지 우리는 여느 이웃집과 비슷하게 지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눌 것이 생기면 기꺼이 나누는 이웃. 이제 이웃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남의 이야기라며 마음을 푹 놓았다. 그날 새벽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 쾅. 우당탕탕 -


새벽에 일어나 소파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현관문을 뚫고 굉음이 들렸다. 물건들이 깨지고 쇳덩이가 땅에 구르는 소리였다. 놀라서 후다닥 현관문을 열었더니 앞에는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어 있었다. 산발머리에 맨발로 서 있는 여자, 그 앞에 넘어져 있는 아이 자전거.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후다닥 다시 집으로 들어와 슬리퍼와 담요를 챙겨나갔다. 복도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아직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어도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였다. 담요를 어깨에 걸쳐주자 젊은 엄마는 "저기... 신고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더니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신고를 하고 혹여 내가 옆에 있는 게 수치스러 울까 봐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남편이 나와서 때릴지도 모른다며 경찰이 올 때까지만 함께 있어 달라는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곁을 지켰다. 많은 질문이 목구멍 깊숙이에서 치고 올라왔지만 입을 꾹 다물고 옆집 현관문을 노려봤다. 저 문 앞에 서 있을 남자를 상상하니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여자를 때리고 물건을 던지나.' 

잠시 후 도착한 경찰 두 분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녀는 훌쩍거리며 부부 싸움을 하게 된 이유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남편이 새벽에 들어왔다는 말을 시작으로 화가 나서 너는 돈만 벌어오면 다냐, 나는 두 아이 육아 때문에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돈 버는 게 대수냐라고 했더니 술에 취한 남편이 손찌검을 했단다. 너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며 이혼까지 요구했다고. '야'와 '너' 인신공격의 말들을 술술 풀어놓는 여자의 입술에 나만 놀란걸까?


이야기를 들으며 수첩에 기록하던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중 선배로 보이는 경찰관이 벨을 누르자 그제야 깬 아이들이 울어 댔다. 소리를 지르는 남편과 문을 두드리는 경찰관 욕을 해대는 엄마 사이에서 폰을 들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그녀는 짐을 챙겨 아이들을 안고 경찰관들과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의 집 부부 싸움에 무슨 참견을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사건 이후 친정에서 지내다 돌아온 그녀의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때리는 소리,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매일 들렷다. 이 소리는 층간 소음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유발햇으며 내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파 놓았다. 소음과 아동학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울음 소리가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옆집 벨을 누른다. 그나마 내가 방문하면 그녀의 고성도 아이들의 눈물도 잦아들기에.


며칠 전,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놀이터 한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다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눈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아마 내 얼굴에서 반가움은 보이지 않았을 테다. 집에 들어와 아동학대 신고를 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검색했다. 아이가 울었다는 이유로 타인의 신고를 받아 원치 않게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는 엄마의 후기에 숨이 턱 막혔다.  


어떤 사람은 내 반응이 오지랖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위기의 옆집 부부에게는 관심이 없다. 부부는 헤어진면 남이 되겠지만 세상의 전부인 엄마의 학대는 평생 아이들 마음에 각인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감각들이 예민해진다. 내가 보고 듣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부디 날카로운 가시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이웃 복'은 쭉 없어도 좋으니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길 오늘도 나는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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