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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May 14. 2020

고객 한 명을 위한 미용실(만족도 100%)

친정 아빠의 손자사랑~

손을 잡고 걸으며 아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평소와는 다르게 입이 3cm 나온 녀석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가기 싫은데... 안 가면 안돼요? 이제 할아버지한테 가요 네?”

“...” 내가 할 말을 뻔히 아는 녀석의 이 질문~

“오늘 씩씩하게 다녀와서 할아버지랑 영상 통화할까?? 아마 우리 아들 잘했다고 할아버지께서 엄지손가락을 번쩍 올리실 걸.”

아들을 일단 달래는 말이긴 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는 슬픔을 도저히 숨길 길이 없어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내 가장 큰 불만사항은 머리카락 자르기였다. 귀밑 3cm 똑 단발을 유지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다른 친구들은 다가는 미용실에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전용 미용사는 투박한 손의 아빠였으니까~ 미용을 배우신 것도 그렇다고 업으로 하신 것도 아니셨다. 단지 미용실에 가는 비용이 아까울 정도로 집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한 두 번 하고 마시겠지 생각했다. 남동생과 여중생인 나를 이발기와 가위로 쓱쓱. 눈물을 그렁그렁 하게 쳐다봐도 아빠는 결과물을 보시고 늘 흐뭇해하셨다. 아빠의 가위가 멈춘 건 남동생이 대학을 다닐 때부터였고 그제야 고객 두 명의 미용실은 폐업을 밟았다. 


'그래 앞으로 아빠가 이발기를 드는 일은 없으실 거야....'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르고 다시 개업하는 순간이 왔으니 그것은 친정에 하나뿐인 손자가 태어나서였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아빠는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 손주는 할아버지가 이발해줄게...”

"아빠 예전처럼 그렇게 자르시는 건 아니죠?? 아이라 울 건데..."

내 걱정을 뒤로하고 아들의 머리카락은 자연스레 할아버지 것이 되어갔다.


아기 때 두세 달에 한 번씩 하던 이발은 후니가 5살이 되던 해부터 한 달에 한 번꼴이 되었다. 장소는 거실, 욕실, 심지어 아빠가 일하시는 곳. 아이의 몸에 비닐을 돌돌 말기도 혹은 수건으로 대충 휙 두르고 소 5분 미용은 최대한 고객이 짜증내기 전에 끝내시는 센스. 처음에 찡찡거리던 아이는 점점 익숙해졌고 할아버지의 손에 깔끔 스타일로 거듭났다.    


“우리 손자 할아버지가 대학교 갈 때 까지는 책임지고 이발해준다.” 아빠는 이렇게 선언하셨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나에게 앞으로 찍을 일 많을 건데 왜 찍냐며 아빠는 절대 찍지 말라고도 하셨었다. 2019년 6월이 되기 전까지는~~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상한 느낌으로 받았던 전화. 떨리는 목소리의 엄마였고 뭔가 안 좋은 일이구나를 직감할 수 있었다. 급히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는 그 길에서도 괜찮을 거야 라는 말만 수십 번~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아빠의 모습은 내생에 처음 보는 그것이었다.


너무 놀라면 눈물이 나지 않는 건가? 아니면 내가 이전에 흘린 눈물이 너무 많아서인가?? 눈물은 나지 않고 그저 고혈압으로 눕지도 못해 앉아있는 아빠의 손만 잡고 “괜찮을 거야.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무슨 근거의 믿음이었을까?? 그동안 아빠는 병원 한번 가신적도 없는 정말 건강한 몸이셨다. 공익 10단의 다부진 몸. 60대에도 온몸이 근육이었고, 술 담배도 입에 댄 적이 없는 분이셨기에 병원 근처는 가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전혀 몰랐다.  아빠의 고혈압 그로 인한 뇌경색~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280의 혈압으로 혈관이 버틴 게 그나마 술 담배를 안 해서란다. 왼쪽 다리 왼쪽 팔과 손 언어 쪽에 문제가 생겨서 잘 걷지도 손을 잡지도 내 이름을 똑바로 말씀하시지도 못하는 아빠 곁에서 왜 나는 눈물이 안 나오는 건지 의아했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예전처럼 강연도 하시고 운동도 하시고 아이의 이발도 해주실 거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흐르고 나서야 예전에 아빠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내 기억 속에 혹은 사진 속으로만 확인할 아빠라는 걸 스스로 인식했을 때 비로소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하루 이틀 눈물이 아니었다. “아빠”라는 두 글자만 나와도 자동으로 펑펑~ 몸속 수분이 말라버릴 때까지 바가지로 퍼내는 느낌까지 들었으니...


다른 사람 앞에서 울기 싫어하는 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음을 토해냈다. 아빠를 보면 이젠 내가 오열할까 봐 못내 아빠를 피하고 아이를 영상통화로만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버틸 자신이 없었다. 집에 와 일기장을 펼쳤다. 오직 한 명뿐인 고객을 위해 아빠가 운영한 개인 미용실

하루하루 날짜를 연습장에 써보니...

13년부터 쓰러지시기 4일 전 이발까지 총 40회~ 



아이는 작년 7월!! 태어나 처음으로 미용실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깔끔한 공간에 푹신한 의자. 전문가의 현란한 가위 놀림.

쭈뼛쭈뼛 미용사 이모를 쳐다보더니 방긋 웃으며 “우리 할아버지가 훨씬 잘 잘라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다. 순간 내 얼굴은 빨간 토마토가 되었고 미용사는 웃으며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예쁘게 잘라줄게요라고 아이를 안심시켜주었다.


할아버지가 이발을 못하신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할아버지표 이발을 그리워하고 있다. 언제쯤 할아버지 왼손은 펴지냐며 자꾸 손에 좋은 음식을 검색해 보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만나면 꼭 왼손을 의사처럼 체크하는 녀석~

“이리 펴보세요. 이렇게.... 괜찮아요??”  


싫어하는 이발을 미용실에서 말끔하게 마치고 밤톨이 되어 나오면서도 아이는 여전히 할아버지를 찾는다. 약속대로 집에 와 목욕 후 할아버지와 영상통화.

“할아버지 저 이발했어요. 할아버지가 더 잘 자르는데 언제 이발해 줄 거예요?”

“우리 손자 보아.... 서라도 빠아리 나아보련다.” 

아빠의 말씀이 점점 느려지신다. 힘드신 거다. 울컥 또 뻑뻑한 눈에 물이 차오르면서 얼른

“아빠 다음번 이발은 아빠가 해주시는 거죠? 곧 갈게요.”라고 급히 전화를 마무리...


평범이 행복이라는 걸. 평범한 삶 자체는 축복이라는 걸 왜 모르고 지냈을까?? 평범하기 위해서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주위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잃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평범함. 감사해야 할 이유들.    

잠들려는 아이를 안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자고~ 어쩌면 고객 한 명을 위한 의지로 널 위해 기적이 일어날지 모르니... 기적이 있기에 그 말이 생긴 거라며~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좋아하는 갈대를 뽑아야 한다며 웃어주던 로맨틱한 우리 아빠.

그 시절 아빠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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