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외할머니께서 곧 95세가 되신다. 치매가 온 것도 아닌데, 노치원에서 온 어느 날 외할머니는 그 길로 요양병원으로 보내졌다. 가족회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방적인 통보였다. 재산 싸움은 남의 집 얘기인 줄 알았는데, 눈 뜨고 코 베인다는 게 이런 건가? 외할머니를 억지로 요양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외할머니께서 농사지어서 지켜온 그 집을 팔겠다고 연락이 왔단다. 역시 또 일방적인 통보였다.
외할아버지는 어릴 때 시집을 온 외할머니를 시부모와 남겨 두고, 부산에서 둘째 부인을 얻고 자식도 셋이나 낳고 살았다. 외할머니는 혼자 아이 넷을 키우며,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성질이 불 같았던 호랑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똥, 오줌을 받아내며 혼자 간호를 했다. 생활비는 농사진 작물을 머리에 이고 장에 내다 팔았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내 증조모는 내가 3살 때까지 함께 살았다. 아빠는 신혼 당시 병원에서 일 년에 364일 당직을 하던 시기였고, 엄마는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외손녀를 위하느니 방앗 고를 위한다는 말을 해 나를 눈물 바람에 젖게 했던 외할머니는, 말만 그렇게 하셨지 나를 정말 이뻐했다.
두 살쯤의 기억이다. 옥상에 올라가 증조모 등에 업혀서 이제나 저제나 외할머니가 오시길 기다렸다. 처마에는 감을 곱게 깎아 실로 꿰어 달려 있었고, 나는 징징 대며 할머니 언제 오냐고 조르다가도 증조할머니가 나를 업는데 너무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던 장면이 기억에 있다.
몇 년 전, 큰외삼촌이 갑자기 혈액암으로 돌아가시고, 다른 형제들은 큰외삼촌 가족이 할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에서 모시는 조건으로 그 집에 대한 재산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곧 깨졌고, 알고 보니 이미 오래전에 큰외삼촌은 형제 모르게 그 집의 등기를 본인 명의로 했고, 돌아가시기 전 본인의 큰 아들에게 이미 토지와 건물을 각각 나눠 상속했다. 팔아봤자, 전세 아파트 하나를 구할까 말까라는 그 뻔한 거짓말을 엄마는 믿었고, 나는 요즘 좋아진 테크놀로지로 적어도 그 두 세배로 내놓은 부동산 리스트를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다. 엄마는 그 재산에 처음부터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 몫으로 적어도 할머니가 혹시 중환자실에 입원했때의 병원비, 장례비, 그리고 할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할아버지 묘를 이장할 비용을 남기기를 원했다. 그러자, 빈정거리며 그 옛날에 여자에게 집을 남겼겠냐며 말했단다. 분해서 새벽 5시까지 잠을 설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에 아는 변호사님께 자문을 구하는 게 다였다. 등기를 하고 10년 안에, 또는 형제들 모르게 본인 앞으로 집 등기를 해 놓은 걸 안 지 3년 안에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쪽이 이미 다 알고 있었을 테고, 예전부터 준비를 해 왔을 것이다.
법을 안다는 것은 감정에 휩싸여 분노에 지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포기도 그만큼 빨라진다. 이럴 때 변호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 그러면 엄마의 분노에 내 화가 더해져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대처를 했었겠지.
그러다 읽게 된 이 책에 나오는 70살의 딸의 모습은 더 내 마음을 공허하게 했다. 평생을 바쳐 남을 위해 살아온 외할머니가 생각했던 본인의 인생 끝자락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지도 못했으리라.
프롤로그 제목처럼 나는 이 사단을 지켜보며 우리 엄마의 장례식에 대해 엄마와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어 졌다. 그리고 책에서처럼 '효도 분량 포인트제'의 국가적 보급이 시급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작가의 엄마는 70세로, 7남매의 큰 딸로 유쾌한 그녀는 송 씨 일가에 효도 분량 포인트제를 도입했다. 이것 외에도 그녀는 어느 정치인의 행보보다 위대한 일들을 척척 해냈다. 할머니의 일정을 요일별, 시간별로 짜서 치매 노인 성장 프로그램, 일면 '혼자서도 잘해요'를 공약으로 내세워서 말이다.
효도 분량 포인트제는 재산에 부의금까지 더해서 분배하면서 엄마가 투병하실 때 효도한 정도를 따져서 분배했단다. 기준은 '용돈, 방문, 외식, 음식, 병원, 전화'등 10개 항목으로 정하고 각각의 횟수를 철저하게 조사했다는 이야기에다 중간 정산을 도입해 효도를 하는 자식들에게 포인트 중간 정산을 해서 조금씩 나누어 주고 포인트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발언권도 더 주고, 남은 재산 나눌 때 기준으로 삼겠다는 신박한 아이디어다.
그러면서 작가는 엄마와 엄마의 장례식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한 인간으로서 인격과 자율성을 상실한 상황이라면 딱 생존만 할 수 있게 관리해주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지만 인격이 살아 있고 자존심을 지키길 원하는 상황이라면 좀 더 좋은 환경을 갖춘 요양원으로 보내 달라고 하셨단다.
"누구나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죽음인데, 마치 없는 일인 듯 애써 못 본 척 눈감고 쉬쉬했다." (259쪽)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하며 타협했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돕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린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므로, 이들 가족에게도 당사자와 유사하게 슬픔, 분오와 같은 감정이 반복된다. 따라서 임종을 지키는 가족에게도 관련 교육과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죽음을 수용해가는 과정으로 나아가면서 삶과 죽음의 가치를 찾도록 교육한다." (261-262쪽)
"결국 정답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는 거다.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는 죽음, 의미 있는 사람과 함께 준비하는 죽음, 내 삶의 흔적을 정리하는 죽음, 통증이 없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각자의 답을 찾고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는 죽음을 당하는 일 없이, 담담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263쪽)
이 외에서 이 책에서는 장기 기증, 시신 기증, 장례 서비스, 생전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부고 대신 초대장을 받아 들고 온 문상객 혹은 파티 손님들을 환한 웃음 올 직접 맞이한다. 그렇게 감사, 용서 그리고 사랑을 한자리에 섞어 놓으면, 떠나는 자와 남은 자의 삶과 죽음이 같은 색이 되리라." (329쪽)
작가는 책의 마지막을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로 마무리한다.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을 때는 항상 엄마의 입장에서 먼저 헤아릴게. 엄마에게 치매가 찾아오면 엄마의 인격에 맞게 대우해달라고 했던 말을 기억할게. 적적함과 외로움이 커지면 로봇 강아지를 선물하고, 엄마가 좋아한 여행과 운동, 산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울게.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은 하지 말고 장기기증으로 생명을 나누거나 시신을 기증해달라고 한 엄마의 뜻을 기리도록 할게." (350쪽)
딸이 셋이나 있지만 어쩌다 보니 다 해외에서 살고 있다. 엄마는 눈이 침침해서 책을 읽기도 힘들고 대화할 사람이 없다 보니 자꾸 말할 때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전화로 리디북스 앱을 까는 방법, 책을 듣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이 책을 들어보기를 권했다.
나도 엄마에게도 엄마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할 테지.
엄마는 아빠가 교통사고 후 지난 20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관련 글 하단에 링크)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더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 부담을 주기 싫어 치료 연명을 거부한다는 서류를 작성했으며, 큰 병원에 가면 자식들이 그 서류를 다 볼 수 있게 해 놓았다고 했다. 수목장도 좋은데, 나무를 베어 버릴까, 떠내려갈까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엄마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와 작가의 어머님처럼 유쾌하게 엄마의 멋진 장례식에 대한 얘기를 더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겠지.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신 신소린 작가님과 멋진 송여사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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