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써야 할 편지

우리는 대부분 마지막을 알 수 없기에...

by 뉴욕박변

새벽 4시 반, 한 시간 일찍 가서 소독을 마치고, 미리 소독한 신발로 갈아 신습니다. 면회가 허락되는 새벽 5시 반이 가까워지면, 보호자들이 하나 둘 모여 소독을 마치고, 온 순서대로 줄을 섭니다. 새치기를 하거나, 소독한 신발을 갈아 신지 않으면, 어김없이 제게 한 소리를 듣습니다.


면회가 허락되는 건, 하루 딱 두 번, 새벽 5시 반과 오후 5시 반. 그것도 길어야 한 가족당 한 번에 한 명씩 딱 15분입니다. 단 1분이라도 더 보기 위해, 줄 서서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워 맨 앞에서 매일 아침 한 시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5시 반이 되면, 중환자실의 면회가 시작됩니다. 모든 옷을 홀딱 벗겨놓고, 머리는 빡빡 깎은 채, 한 손은 무의식 중에도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올리는지 지나치게 흔들어 침대에서 떨어지자 아예 양손을 침대에 묶어 놓았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이름 모를 주사들에, 목에는 구멍이 뚫린 낯선 모습의 아빠를 마주합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조르고 졸라 시작한 7년간의 유학 생활은 나를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빠는 어떤 색을 좋아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직,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는 아빠를 보낼 수 없다고,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제발 깨어나 달라고 떼를 쓰며, 손은 정신없이 따뜻한 수건으로 샤워를 할 수 없는 아빠 몸을 닦아냅니다. 옆에서 뇌수술하고 깨어난 환자들이, 하나, 둘, 셋 해 보라면 하면 어눌하지만 하는 모습을 보고, 왜 아빠는 아직도 누워만 있느냐고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15분이 되기 전에, 엄마와 교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씩씩하게 눈물을 훔쳐내고, 아빠가 사고 난 충격으로 35kg까지 말라 결국 같은 병동에 입원한 엄마와 바통 터치를 합니다.


어떤 날은, 중환자실 앞에서 괜히 어슬렁거리다 보면, 병원천을 머리끝까지 씌운 베드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분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병원으로 실려 오기 전, 아침 집을 나설 때가 마지막으로 가족 얼굴을 마주한 날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우리 중 누구는 준비 없이 마지막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갑작스레 맞닥뜨린 죽음은 가족에게 슬픔뿐 아니라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숙제를 던져주게 됩니다.


난 아직 30대이니까, 유언장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는 죽은 사람이 유언장이 없는 경우, 유언 집행자 (executor: 유언장에 적힌 뜻을 받들어 그 내용대로 재산을 나눠주는 일을 하는 사람)를 정하는데만 1년 남짓의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비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언장이 없는데, 이 절차도 거치지 않으면, 정부로 전재산이 환원되기도 합니다. 또, 가족끼리 서로 유언 집행자가 되겠다고 소송을 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언장은 내가 건강하고, 정신이 맑을 때 써 놓아야 합니다. 그럼 유언장을 쓸 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1. 5순위까지 유언 집행자를 정한다.


대부분은, 내 배우자나 자녀를 유언 집행자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1순위는 내 배우자, 만일 내 배우자가 나보다 먼저 사망했을 경우는, 장남이나 장녀를 유언 집행자로 정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2순위까지만 정한 유서는, 만일 온 가족이 한 차로 여행을 갔다가 난 사고로 동시에 다 사망했을 시, 누가 유언 집행자가 될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5순위까지 유언 집행자를 정하도록 합니다.


2. 내 모든 자산 목록을 적는다.


내 은행 계좌, 생명 보험, 집문서뿐만 아니라 소유한 값나가는 차량, 가구, 보석까지도, 명확하게 각 아이템을 묘사하고 누구에게 갈 것인지를 적습니다. 또, 만일 리스트에 미처 포함되지 않은 자산이나, 지금은 없지만 내가 유언장을 작성하고 난 후 내가 사망하기 전까지 생길 미래 자산의 목록도 따로 만들어 놓습니다.


미국의 경우, 공동명의 (joint property)로 된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유서에게 누구에게 주라고 정할 수 없으며, 그 공동명의자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모든 자산 목록을 빠짐 없이 적었다면 각 자산이 누구에게 얼마큼 돌아갈지 최대한 상세하게 적습니다.


3. 미성년자 자녀가 있다면, 가디언 (guardian)과 트러스티(trustee)를 같은 사람으로 정하지 마라.


미성년자 자녀가 있을 시, 내가 죽은 후 자녀의 양육을 담당할 가디언과, 자녀에게 돌아갈 재정을 책임질 트러스티를 같은 사람으로 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 자녀의 양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재정까지 책임질 경우, 그 재정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만일 트러스티를 따로 정하지 않은 경우, 어린 자녀는 갑자기 생긴, 뒷자리에 0이 몇 개 더 붙은 통장잔고를 쉽게 바닥낼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철이 들기전에 내가 죽었을 경우를 대비해, 변호사나 회계사에게 트러스티를 맡겨, 몇 살부터 얼마의 돈을 줄지, 자녀를 맡아 양육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를 줄지, 대학에 가게 되면 학비와 생활비는 얼마나 줄지 등등을 자세하게 유언장에 남길 수 있습니다.


4. 수혜자 목록이 따로 있는 재정 항목은 유서가 해당되지 않는다.


단, IRA나 생명 보험 등 수혜자 (beneficiary)를 따로 지정하게 되어 있는 자산은 유언장에 적힌 대로가 아닌, 정해놓은 수혜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수혜자는 내가 언제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5. 내가 거주하는 주에 변호사를 만난다.


이렇게 모든 목록을 다 적고 누구에게 돌아갈지를 정했다면 변호사를 만날 차례입니다.


내가 집에서 자필로 쓴 유언장은 주에 따라 아무런 효력이 없을 수 있습니다. 뉴욕주의 경우, 효력이 있는 유언장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이것은 변호사 능력 자격시험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문제입니다. 뉴욕주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조건 중에서, 특히 유언장에 한 서명이 유언장을 남긴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증언해줄 2명의 증인이 필요 합니다. 단 이 증인을 정할 때는, 내가 재산을 물려주고자 하는 사람을 피하고, 대부분은 나와 친분이 없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이 해주기도 합니다. 이는, 나중에 유언장의 진위여부에 대해 문제가 생겼을 시, 그 두 명의 증인이, 그 유언장한 서명한 사람이 유언장에 적힌 사람이 맞는지를 확인해 주고유언자가 유언장에 서명할 당시 정신이 맑았는지, 치매는 없었는지,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서명한 것은 아닌지 등등에 대해 확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유언장의 조건이 주마다 다르므로 반드시 거주하고 있는 그 주에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6. 5년마다 새로운 내용이 필요하면 유언장을 다시 적습니다.


보통 완성된 유언장은 원본을 두 부로 만들어 하나는 내가, 하나는 변호사가 사무실에 보관합니다. 혹시라도 한 쪽이 잃어버렸거나, 유언장이 집에 일어난 화재나 홍수로 손상될 때를 대비하고, 또 어느 유언장이 진짜인지 일 때를 가려낼 때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5년 주기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기도 하고, 사망하기도 하고, 세금법이 바뀌기도 합니다. 따라서 5년마다 만나서 필요하면 새로운 내용으로 유언장을 다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작성된 유언장은, 그전에 쓰였던 유언장을 대체하고, 그전에 유언장은 찢어서 버리시면 무효화가 됩니다.


아빠의 사고로 인해 저는 30대에 제대로 된 유언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100일 안에 코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는 의사들 말에도 불구하고, 깨어나셔서 가족을 알아보고, 사고 났을 당시의 기억과 최근 단기 기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회복을 하셨습니다. 올해로 병원생활만 햇수로 20년째이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입으로 음식을 잡수실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어서 눈을 깜박여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빠는 비 오는 출근길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셨고, traumatic brian injury (뇌손상)으로 인해 1급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빠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우리 가족 모두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안다면, 다리 뻗고 잘 수 있을까, 분해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거리에 CCTV가 흔하지 않아서 누구인지 밝힐 단서도 없었고, 보험회사에서는 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 처리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맞서 싸울 힘이 없는 제가 한 없이 초라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가장으로서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원망하는 삶을 살기보다, 똘똘 뭉쳐서 아빠가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았습니다. 아빠가 코마에서 100일 만에 깨어나, 스케치북에 동그라미 엑스로 의사소통을 하고, 처음으로 다시 '아' 소리를 내고, 애기처럼 말하기 시작해서,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으로 돌아오기 까지. 아빠 사고가 아니었다면, 20대의 나는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훨씬 적었을 테니 그 시간에 감사했고, 힘든 재활치료를 끝까지 견뎌 온 아빠가 감사했습니다. 살아 계셔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로 아빠가 계시는 병원은 면회가 금지된지 몇 달 째입니다. 혼자 버티고 있는 아빠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언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써야 하는 편지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언제가 마지막인지 알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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