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변: 마음이 힘들 때 꺼내보는 책

정신과 의사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

by 뉴욕박변

마음이 유난히 힘든 날, 그냥 아무 말 없이 눈만 마주쳐도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그 한 사람이 내 손을 꼭 잡아주면 괜찮아질 것 같은 그런 날. 그런 날이 쌓이고 쌓여, 내 마음이 충전이 필요하다고 깜빡이다가 그만 꺼져 버렸다. 사는 게 버거워졌다. 지겨워졌다. 딱히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딱히 살고 싶지도 않았다.


"딸아 사랑한다. 너는 누가 뭐래도 내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그 말은 곧 네가 어떤 선택을 하건 그 결과가 어떻건 간에 상관없이 나는 너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네가 그랬듯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렴. 해 보고 안 되면 뭐 어떠니. 까짓것 쉬어 가면 그만이다. 최소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바보는 아니니까 그것으로 된 것이다. 그러니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삶의 재미를 내려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잘 안 떠오르고, 자꾸만 화가 날 때는 이 책을 참고하렴." (24 페이지)


이 프롤로그의 첫 두 문장을 읽다가 터진 눈물은, 꺽꺽대며 삼킨 슬픔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인 엄마가 미국에서 결혼하고 살게 된 딸에게 '30년 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그러나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편지로 적었다. 살면서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사랑이 가득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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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못된 딸이 돼라


"만약 누군가 너에게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모성을 운운하며 우리네 어머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거든 귀를 닫아 버려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라. 만약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38 페이지)


이미 못된 딸로 살고 있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다. 그럼에도 더 듣고 싶다. "침 못됐다"라는 말.


2. 울고 싶으면 울어라,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우리나라 청춘에게 서른 살이란 지금까지 누렸던 특혜를 박탈당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해 놓은 게 무엇이냐?"라는 식의 숙제 검사를 요구받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자신에게 조금만 덜 가혹했더라면, 울고 싶을 때는 좀 울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더라면, 그처럼 한꺼번에 긴 시간 동안 엉엉 울 일은 없었을 텐데..." (51-52 페이지)


"서른 살이 되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만 셈하지 말고, 그 시간을 잘 견뎌 낸 자신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언제나 강한 척할 필요는 없고, 시종일관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하건 신경 쓰지 않으면 그뿐.
필요하면 울어라. 눈물샘이 다 마를 때까지.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내가 잘 견뎌내 온 시간을 기억할 것. '언제나 강한 척할 필요가,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이야. 원래의 나는, 좋은 일에도, 힘든 일에도, 우는 타인을 보고도 울었는데... 변호사로 일하면서는 눈물을 잘 참게 되었다. 마음 편하게 눈물이 배꼽에 닿을 때까지 울었던 적이 언제였지?


3.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택이란 없다.


"지금은 삽질이 손실로만 보일 수 도 있지만 삽질의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성공을 이끄는 동력이 될 수도 있고,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음을, 그러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삽질이 훗날 또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 (65-69 페이지)


Rachel Hollis의 <Girl, Wash Your Face>란 책으로 마/치/독 (마음치유 독서)을 했을 때도 같은 말이 나왔었다. "Nothing is wasted." 너무 힘들 때는 내 지금 삽질이 다음을 위해 나를 준비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4. 조건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에 대하여


"성격, 외모, 말투, 행동 등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을 조건이라고 보는데, 이 조건은 대부분 어린 시절 형성된 우리의 무의식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여자는 사랑을 듬뿍 주는 남자를 택할 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막상 결혼해서 살아 보니 배려심 많아 보이던 남자가 실은 냉랭한 남자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여자는 무의식 중에 사랑을 주지 않는 남자를 선택함으로써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어린 시절의 대상관계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반복 강박 (repetition compulsion)'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86-88 페이지)


"지금 사랑을 잘해야 다음 사랑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별을 결심하더라도 내가 왜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왜 헤어지기로 결심했는지, 그 과정을 깊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차피 끝날 사랑인데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럼에도 서둘러 사랑을 끝내 버리면 남는 건 후회뿐이고 다음 사랑도 잘할 수 없다고 말이다." (94 페이지)


사랑은 어렵다. 항상 아끼지 않고 사랑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내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는 게 가능해졌다. 상처 받기 싫어서, 두려워서 밑밥을 깐다. 내가 우리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쳤던 그때, 나는 그때 이별을 잘하지 못해 다음 사랑을 잘할 수 없게 되었나 보다.


5. 내가 나를 돌보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들


"몸이 아프지 않게 조심하듯 마음도 상처 입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 (100 페이지)

"나를 돌본다는 것은 모든 감정을 허락한다는 뜻이다." (106 페이지)

타라 브락 박사의 <끌어안음, Radical Acceptance>에도 나오는 말이다. 나의 모든 감정을 허락하는 일.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 일. 아직도 어렵다.


"중간중간 조금씩 쉬어 주는 것이야말로 마음의 탄성을 유지하는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111 페이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힘이
방어 자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힘이
자신의 고통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힘과 용기의 차이> 중에서


"젊었을 땐 나를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위나 재력에 먼저 관심이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러나 살아갈수록 알겠더구나. 힘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마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며,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직되지 않고 부드러워지는 거라고." (112 페이지)


부드러워지는 것, 나이를 더 먹으면 알 수 있을까? 나는 너무나 간절히 쉬고 싶다.


6. 상처투성이 세상에서 나를 보호하는 법: 잘 부탁하기, 잘 거절하기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 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소설가 김훈


멋지다. 이렇게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라고 남의 시선에서 한 없이 자유로우며 주인공으로 사는 삶.


7. 지나가는 일들에 너무 크게 흔들리지 말기를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 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 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300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도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위 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숫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 중에서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이 아프다. 취준생들이여, 힘내라. 당신들 잘못이 아니다.


8. 직장인 사춘기 증후군


"나와 안 맞는 상사나 동료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일단 견뎌라. 죽어라 견디다 보면 알게 된다. 정말 그 사람과만 안 맞는 건지, 아니면 나의 태도를 고쳐야 하는 건지 말이다. 견디라는 말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그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슬럼프에 빠져 있거나 일과 자신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244-245 페이지)


"만약 누군가 천직을 찾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남보다 눈이 밝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여태껏 지루한 시간을 잘 견뎌 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245 페이지)


"어떤 일이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어느 수준 이상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 (246 페이지)


나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 주기적으로 척도를 정해 평가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9. 결혼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결혼이라는 어마어마한 백과사전을 왜 그녀는 몇 단락만 읽고 그게 다라고 생각하는 걸까? 결혼한 지 30년이 넘은 나도 아직 60대의 결혼, 70대의 결혼에 대해선 다 읽지 못했는데 말이다." (411 페이지)


"결혼을 했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 후 찾아오는 외로움을 인정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는 배우자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삶의 외로움도 잘 받아들인다면 좀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27 페이지)


결혼을 해도 안 해도 외롭다지만, 결혼을 하고 외로우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아.


10. 우울: 학습된 무기력


"상실을 어려서부터 강하게 자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잦은 스트레스에 노출된 경우다. 그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이나 사람들이 밉고 원망스럽지만, 워낙 어려서 힘든 일을 당했기에 자기 힘으로는 난관을 헤쳐 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각인된 자기와 세상에 대한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쉬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내 힘으론 어쩔 수 없어.' 이른바 '학습된 무기력'이다." (489-490 페이지)


"우울은 지금 내가 힘들다고 외치는 마음의 소리다. 내가 나를 너무 차갑게 바라봐서, 나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대해서, 지금 내가 아프다고 알리는 외침이다." (495 페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지 않을 말은 나 자신에게도 하면 안 된다.


11. 불안: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


"남들은 모두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불안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위축될 필요도 없다. 지나친 병적 불안만 아니라면 불안은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의 시그널일 수 있다." (508 페이지)


조바심이 들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는 내가 성장하고 싶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면 된다.


12. 번아웃 증후군


"번아웃은 스스로를 다그치다가 끝내 소진되는 상태다." (546 페이지)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상사도 내 밑에 어쏘 변호사도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작년에는 하루도 휴가를 쓰지 않았다. 이번 급한 것만 지나가면, 이것만 지나가면 하다가 1년이 넘어버렸다. 조만간에는 하루라도 쉴 거야.


13. 분노


"분노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힘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보통 분노를 부정적인 감정을 여기고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애를 쓴다." (555 페이지)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헌신함으로써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자기를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모든 일을 떠맡는다." (558-559 페이지)


"작은 일에 '죽고 사는'문제처럼 달려드는 이들이 있다. 자기 과대 감 때문이다." (564 페이지)


"자주 화가 나도 행동으로 연결된다면 외부의 사건이 아닌 내부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 (564 페이지)


"신기하게도 호흡만으로도 분노는 제법 가라앉는다." (567 페이지)


다행이다. 내가 일중독으로 사는 것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일 줄이야. 다만, 내가 자기 과대 감 때문에 작은 일도 죽고 사는 문제처럼 달려드는 적은 없는지를 경계해야겠다. Pick your battles.


14.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남들을 이기거나 남들에게 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몫만큼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701 페이지)


'내 몫만큼 행복'하게 살자. 재밌게 살자. 인생 별 거 없다잖아. 그런데 재미있게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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