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괜찮다고 말했다.

사람마음 어디 내 맘대로 되던가

by 뉴욕박변

그와의 연애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만나면 서로에게 할 말 들을 말 많은데, 막상 물리적으로 잘 보지 못하고 몇 달이 흐르고, 잊을만하면 연락 오는. 어장관리당하는 그런 느낌. 그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한 달에 쉬는 주말, 딱 두 번, 그중에 당직이 걸리면 병원에서 스탠바이를 하면서 밤새 일했고, 그나마 정했었던 약속도 갑자기 취소해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괜찮은' 남자를 만나게 된 나를 열렬히 응원하던 주위 사람들도, "걔는 너무 일중독이라 네가 너무 외로울 거야"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첫 데이트는 너무 임팩트가 강했고, 가끔 나는 뭐가 문제였을까를 생각했었다. 매일 만나면 책 얘기, 동기 부여 콘퍼런스 얘기, 뭐 이런 얘기만 하던 그 사람과는 계속된 만남은 아마 너무 '지루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람 마음 어디 내 맘대로 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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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말 한참만에 그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는 이미 예전에 내 속마음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정도로 마음이 정리된 상태였고, 뜬금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는 대뜸 미안하다고 했다. 그때 그렇게 우리의 관계가 끝나버린 것에 대해... 겁이 났었다고 했다.


그가 5살쯤 가족이 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당시에 브루클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으로 칼 맞은 시체가 차 위로 떨어지는 험한 동네였고, 그의 아버지는 결국 6살인 그를 먼저 돌려보내겠야겠다고 결심하고, 공항에서 억지로 낯선 사람에 이끌려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제발 나를 보내지 말라고 눈물로 애원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단호하게 돌아섰다. 그때 이후로 그는 자기 삶에 누군가가 소중해지려 할 것 같으면, 잃게 될까 두려워 항상 마음을 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왜 그런 패턴이 반복되었었는지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쳇, 그런 설명 따위로 나 혼자 견뎌야 했던 그 상처 받은 내 마음이 단번에 OK를 외쳐줄 리 없지 않은가. 내가 더 이상 그를 '남자'로 대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또 상처 받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는 나의 결연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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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년 전에 사놓은 선물인데 줄 기회가 없었다며 아이처럼 내 표정을 살핀다. 그냥 그 마음이 이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은 이제는 <연금술사>에 나오는 그 장면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칵테일 한 잔을 보면, 그 칵테일이 그 테이블에 담기기까지의 여정이 눈으로 그려지는 그 장면.


그래서, 책임감으로 무장되어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그가,

그를 보고 있으면 그 안에 내가 보여 안쓰러운 그가,

나를 만날 때는 맘껏 아이처럼 어리광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오늘은 이런 거 배웠고, 친구들이랑 이런 얘기 하고 놀았고, 새 장난감을 자랑하는 아이같이... 그럼 그 수다를 그냥 잘 들어주고, 때로는 질문도 해주고 맞장구도 쳐 주면서.


그러면서 내 마음이 이 만큼이나 자라났구나 생각이 든다.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아직 나 괜찮구나 싶다. 내 마음이 힘들 때는 남의 힘듬이 잘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오늘은 네가 일 끝나고 저녁에 병원으로 또 출근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한 달 늦은 내 생일 축하 파티로, 만나지 못한 그동안 네가 배운 것과 내가 배운 것, 우리가 읽은 책들에 대해서 실컷 수다 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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