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일상
오랜만에 멀리 있는 친구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실은 요 며칠 그녀의 사랑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이란
큰 에너지가 되어줍니다.
하물며 그게 사랑이라면,
그건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의 목소리에서
이런 게 살아있는 거구나 싶을 만큼의
생기가 느껴졌습니다.
적당히 나이가 든 지금의 사랑은
오히려 어릴 적 멋모르던 그때의 사랑보다
더 조심스럽고 더 애틋한 것 같습니다.
잊고 지내던 소녀 감성까지 더 해져
그야말로 하늘의 별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의 절로 솟아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덩달아 설레었습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어느새 감정 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그녀보다 더 흥분되어
그 마음 알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다 문뜩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또 이 인연이 오래가지 않으면 어쩌지라며
갑자기 두렵다 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나는 토닥거려주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헤어짐이 있더라도 사랑을 하는 것이
삼천 배는 나은 것 같다고.
그리고 마지막이 오면 그 건 그때 가서
며칠 울고 괴로워하면 된다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
헤어지고 추억이라도 남는 것이
삼만 배는 나은 것 같습니다.
친구의 사랑이 좋은 결실을 맺기 바라며
그렇게 오랜 통화를 마쳤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덩달아 설레었던 기분이
갑자기 착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연애 영화에 너무 몰입했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의
작은 공허함 같은 거라 해야 할까요..
창문의 커튼을 걷고 침대 한편에 앉아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랑,
[나 지금 너무 행복해!]라는
친구의 생생한 목소리가
한동안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그래, 행복이 그런 거지]라며
공감한다는 듯한 나의 대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행복 같습니다.
그런 행복을 찾은 친구에게
멀리서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면
커튼을 걷지 않아 몰랐었는데
은은한 햇살의 창문 너머 낮 풍경도
의외로 운치 있어 좋습니다.
언제가 다시 이 자리에 기대어 앉아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