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에 붙여

by 동천 김병철

최근 우리나라가 ‘트로트 열풍‘, 아니 ’트로트 광풍‘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지상파나 공중파 할 것 없이 TV 여기저기 ’트로트‘가 판치는 세상(?)이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보이스트롯‘, ’내일은 미스터트롯‘ 등등 온통 ’트로트‘ 노래가 판을 치고 있다.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에서 진선미 등 일정 순위에 든 가수들은 일거에 팔자를 고치고 졸지에 톱가수 레벨로 도약했다. 수년 또는 수십 년 무명 가수가 ’트로트‘ 노래를 잘 불러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고 돈방석에 앉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녀노소 모두 ’트로트 열풍‘에 빠져든 것 같다.

자고로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백의민족, 배달의 겨레임을 실감케 한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물론이고 슬플 때도 마음을 담아 노래로 한(恨)을 푸는 민족은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 장사지낼 때도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구슬픈 상여가를 부르는 것이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트로트‘(trot)가 소위 ’K-pop‘이 아니라 그 뿌리가 일본 ’엥카‘(演歌)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본래 ’트로트‘는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를 사용하거나,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를 ’라‘의 비중을 높여 사용하는 음계를 지닌 노래로 일본 ’엥카‘에서 시작되었다. 한 마디로 일본 대중가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양식으로 일제강점기에는 특별한 양식명이 없이 ’유행가‘, ’유행소곡‘ 등으로 불리다가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뽕짝‘이라는 비하적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내가 대학 다닐 무렵인 70년대 중반에는 ’뽕짝‘과 함께 ’도로또‘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도로또‘라는 말은 ’트로트‘의 일본식 발음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이 든 사람들은 ’트로트’라는 말보다 ‘뽕짝’이나 ‘도로또’라는 말에 익숙한 편이다. 따라서 ‘도로또’하면 일본 ‘엥카’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트로트’ 역사나 일제강점기의 음악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배상문제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韓日軍事情報保護協定) 문제 등으로 유사 이래 한일관계가 최악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때 왜 하필이면 ’K-pop‘이 아닌 일본 ’엥카‘에 뿌리를 둔 ’트로트 열풍‘에 빠져들고 있는 걸까?

나는 이런 ’트로트 열풍’을 보고 방송사 관계자나 사회 지도층에서 크게 두 가지 잘못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하나는, 요즈음 최악의 한일관계에서 지금 우리가 일본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인 ‘트로트’에 빠져들어야만 하는지 의심스럽고, 일본인들은 우리나라가 ‘트로트 광풍’에 빠져있는 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몹시 궁금하다. 금년 들어 일본과 우리나라 정부가 관문을 닫고 수출입통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때 갑자기 ‘트로트 광풍’이라니? 난 처음 내 귀를 의심했었다. ‘트로트’ 가요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국민가요 ‘동백 아가씨’가 군부독재 시절 왜색(倭色)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어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 등을 기획한 방송사 관계자들은 ‘트로트’가 일본 ‘엥카’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지나치게 말해 일본 ‘엥카’의 아류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아니면 ‘트로트붐’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했을까?

물론, 한일관계가 정치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고 해도 발전적 양국관계를 위해서 민간인 왕래나 문화교류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가 ‘트로트 광풍’에 빠져있는 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할 뿐만 아니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나의 옹졸한 생각일까? ‘코로나 19’로 인해 우울한 요즈음 노래를 통해 국민들 기분을 상기시키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하는 취지였다면 ‘트로트’ 말고도 우리 노래는 얼마든지 많다. 일제강점기 때는 ‘트로트’와 ‘신민요’가 우리 가요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고 한다. 왜색이 짙은 ‘트로트’보다는 ‘신민요’가 아닐지라도 우리의 ‘가곡’을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설령 ‘가곡’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트로트’ 말고도 ‘고고’, ‘월츠’, ‘슬로우록’, ‘폴카’, ‘칼립소’, ‘스윙’ 등 수많은 경쾌한 리듬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일본 냄새가 풀풀 풍기는 ‘트로트’를 내세워 국민들을 ‘트로트 광풍’에 빠져들게 하는지 알 수 없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일본인들은 여간해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부모 자식간뿐만 아니라 부부나 친구간에도 약 7∼80% 정도만 속마음을 드러낸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금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심히 궁금하다.

겉으론 일본을 욕하고 멀리하면서도 ‘트로트 광풍’에 빠져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일본인들은 내심 쾌재를 부르지 않을지 의심스럽다. 일상생활 속에 하나둘 파고들어 가는 일본풍 모습들이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가 일요일 오후 즐겨보는 ‘전국노래자랑’은 녹화중계로, 일본에서 일요일 오후 생중계로 방송되는 ‘노도지만’(喉自慢, 번역한다면 ‘목청자랑’) 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이고, 모 방송국의 ‘생활의 달인’ 역시 일본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타쯔진’(達人)이라는 프로그램을 흉내낸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방송 프로그램의 약 60% 정도가 일본 방송사 프로그램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트로트’가 왜색이 짙으니까 싫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 아닌 우리 것을 발굴하고 보존·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역량 있고 의식 있는 지도자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BTS)이 순수 우리말 노래로 미국의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영어나 외국어가 아닌 한글로 된 노래로 ‘빌보드차트’에서 순위에 든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그것을 해낸 것이다. 90년대 초반 문민정부 시절 ‘세계화’를 추진할 때, ‘세계화’란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또 하나는,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은 분명 성인용일 텐데 왜 어린아이들이 그리도 많이 출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TV에서 ‘이 프로그램은 00세 이하는 부모의 시청자 지도가 필요합니다’라는 자막을 가끔 본 적이 있다. 성인용 프로그램에 어린이가 출연해도 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트로트’는 본래 매우 애절한 슬픈 노래이며, 대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행복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나 정착하지 못하는 나그네의 고통 등을 내용으로 삼아 진지한 분위기를 지닌 노래라고 한다. 이런 ‘트로트’를 초등학생이, 아니 취학 전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며 춤까지 이상야릇하게 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TV 앞에 앉아 깔깔거리는 어른들 모습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우리 스스로 한번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본다. 어린이는 어디까지나 어린이다워야 하지 않을까? 어떤 어린이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면 각종 동요대회를 통해 그 기량을 키워나가면 될 것이다. 음악적 소질이 있다고 해서 어른들이 부르는 ‘사랑’이니 ‘이별’이니 이런 성인가요를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좋아서 낄낄거리는 부모들은 자식 교육적 측면에서 다시 한번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주변에서 자기 아이를 보고 ”애늙은이“라고 한다면 아이 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이가 똑똑하고 영특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질까, 아니면 속상해할까? 아마 대다수 부모들은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일정한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교육학에서는 이것을 ”발달과업“(Develop Task)이라고 한다. ”발달과업“이란 개인이나 가족이 생애 주기를 거치는 동안 각 단계마다 수행해야 할 역할이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업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생애 주기 각 단계의 진행순서와 중요 발달과업은 일반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나면 영아기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나이 어린 유년기 소년이 어른처럼 행동하거나 사고를 할 경우 우리들은 보통 그 아이를 보고 ‘머릿속에 영감이 들어앉아 있다’거나 ‘애늙은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는 어디까지나 어린이다워야 하는데 어린이답지 못하는 뜻일 게다. 이와는 반대로 만약 60대 장년이 초등학생처럼 행동하거나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이로 돌아가서 젊어졌다고 부러워할까, 아니면 망령이 들었다고 흉이라도 볼까? 어린이는 어린이다운 언행을 해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발달과업’의 각 단계를 잊지 않을 때 건전한 가정, 건전한 사회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트로트 열풍’에 대해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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