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

by 동천 김병철

소싯적에 친구들과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으레 “어떤 사랑을 하고 싶으냐?”라는 질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던 나는 “장작불 같은 은근한 사랑을 하고 싶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사랑에 대한 어떤 확고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다. 폭탄처럼 격렬한 사랑은 타오를 때는 좋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주변을 파괴하고 상처만 남긴다. 그러나 은은하게 타오르는 장작불 같은 사랑은 한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서 밤새 타올라 ‘우리’라는 공간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 준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알고 지내던 지금의 아내와 무려 9년이라는 연애 기간을 거쳐서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해로 결혼 39주년인 우리 부부는 요즘 애들처럼 결혼기념일뿐만 아니라 첫 데이트 날도 함께 기념하며 축하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 부부의 공식 기념일은 두 개인 셈이다. 기념일을 서로 잊지 않고 주고받는 것도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생각에 나이가 들어도 기분이 좋다.

우리 부부의 기념일은 두 개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차원의 기념일은 과연 몇 개나 될까? 그런데 막상 헤아려 보니 국경일과 기타 공휴일(명절과 기념일), 법정기념일과 기타 기념일 등이 생각보다 어마아마하게 많다.

이렇게 많은 기념일 중에서도 금년(‘2019)으로 100주년이 되는 ’3.1 만세 운동‘의 열기는 연초부터 지금까지 TV 등 언론을 통해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이날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서 온 국민이 떨치고 일어나 비폭력적 3·1 만세 운동을 전개한 뜻깊은 날이다. 3·1 만세 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감개무량하고 순국선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일제의 총칼도 두려워하지 않고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져 싸웠던 그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런데 최근 ’독립선언서 국민 낭독 프로젝트‘ 등 일련의 방송 특집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거나 어떤 강한 욕구가 복받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 걱정스러움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치졸한 생각일까? 남녀노소, 각계각층 그리고 재외동포들까지 TV를 통해서 한 구절씩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습은 당시를 재현한다는 의미에서는 보기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 프로젝트가 우리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순기능적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사뭇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언뜻 보기엔 노골적인 ’3·1 만세 운동 100주년 캠페인‘이 국민단결이나 애국심 고취 등을 위해서는 바람직하고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 캠페인이 끝나고 나면 국민의 뇌리에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제국주의 타도‘나 ’대한 독립 만세‘ 또는 ’독립선언서‘ 일부 외에 무엇이 생각날지 의문스럽다. 무엇보다도 반일 감정 조장에 앞장서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명심보감』을 보면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했다. 따라서 과거를 잊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과거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는 평소 주위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상담해 올 때면 우선 속담을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웬만한 인간사 문제는 속담이나 명언에서 대부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국영 방송이 전개하는 ’독립선언서 국민 낭독 프로젝트‘ 등이 왜 염려스러우며 향후 이떻게 전개하면 좋을지에 등에 대해서 우리 속담에서 그 길을 찾아보고 싶다.

첫째,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

2018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새로운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해서 남북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러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로 우리나라는 북미의 틈바구니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잠시 동력을 잃은 감이 든다. 왜냐하면, 남북이 아무리 좋은 안건에 대해서 합의에 이른다 해도 미국이 용인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었고, 게다가 미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우방인 일본을 끌어들여 우리 정부를 압박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다소 배제된 데다 위안부나 강제 징용자 문제 등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반발과 소외감을 느낀 일본은 미국에 바싹 달라붙어서 굳건한 미일 동맹을 과시하고 있다. 이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의 중재자라고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연락한 게 아니라 일본의 아베 총리에게 먼저 전화한 것만 봐도 충분히 알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주인이며 미국과 확고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미국도 그러한데, 일본과는 현실적으로 아주 적대 관계(?)에 가까운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같아서 과연 한·미·일 동맹이 과거처럼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서 북한은 중국과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면서 혈맹 관계를 과시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 방문 운운하며 북·중·러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한 채 일본과 불화하고 북한과 중국과는 겉돌게 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동북아의 외톨이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일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특히 지금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한·미·일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안부나 강제 징용자 문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는데 ’3·1 만세 운동 100주년 프로젝트‘를 통해서 노골적이고 대대적으로 일본을 자극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렇다고 행사를 하지 말라거나 일본의 눈치를 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한지, 어떻게 해야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꼼꼼히 살피고 따져본 후에 프로젝트 방식을 결정했어야 한다고 본다. 동 프로젝트는 개인이나 회사 차원의 조그마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전체와 재외 국민을 포함한 어마아마한 캠페인이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둘째, ’빈 수레가 요란하다‘

TV 화면 속에 비친 독립선언서 낭독이나 대한 독립 만세 제창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허한 일회성 메아리로 끝나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군다나 당시를 재현한다고 해도 ’대한 독립 만세‘는 어딘지 모르게 께름칙하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만세 제창을 할 것이라면 과거 지향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으로 ’대한민국 만세‘로 하면 어떨까? TV 그리고 방방곡곡에서 외치는 ’대한 독립 만세‘라는 함성을 들은 외국인들, 더군다나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독립선언서 낭독·대한 독립 만세 제창을 기념식장에서 조용히 끝내면 어디 탈이라도 나는 것일까? 100주년을 기념하는 데는 일부러 보여 주기 위한 떠들썩한 행사보다 좀 더 내실 있고 알맹이 있는 행사를 추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각급 단체에서 조용하고 심도 있는 100주년 행사를 치르고 각종 문화 행사를 추진했더라면 훨씬 의미심장한 100주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나는 너무나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떠들썩하게 온 세상에 100주년을 큰소리로 알려야만 하는 어떤 당위성이라도 있는 것일까?

3·1 만세 운동을 주제로 한 백일장·사생 대회·웅변 대회나 학술토론회 등 각종 문화 행사를 통하여 한일 합방의 원인을 분석하고 우리 선조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한편, 두 번 다시 그러한 외침을 당하지 않도록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 나름대로 나라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뭔가를 다짐하는 그런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제의 만행을 탓하고 원망하기에 앞서서 당시에 왜 나라를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우리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되돌아보면서 내적으로는 강한 힘을 축척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도 우리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결국 그러한 길이야말로 순국선열께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고 했다. 알맹이 없는 소란스러운 행사보다 더욱 내실 있는 행사가 되기를 바란다.

셋째,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여기서 술은 포도주를 말한다. 포도주는 보통 양가죽 부대에 담아서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데, 발효가 끝난 포도주는 헌 가죽 부대에 담아 두어도 괜찮지만, 새 포도주는 발효 과정에서 가스를 내뿜고 팽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가죽 부대도 자연히 늘어나야만 하는데 이때 신축성이 없는 가죽 부대는 포도주의 발효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했다.

3·1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100년 전의 한반도와 오늘날 한반도의 실상은 사뭇 다르다. 2018년에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도 이제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이런 경제성장과 함께 우리의 사고방식도 큰 전환을 하지 않으면 자칫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수도 있다.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를 깡그리 잊어라‘라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반드시 발전적인 미래의 초석이 되도록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혹자는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100여 년 전의 구한말 때와 너무 흡사하다고 말한다. 국제 정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그때와는 판이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8년 평가에 따른 국제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5위를 기록했다.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는 7위를 차지했다. 국제법 상 전 세계 국가 수는 242개국이라는데 경제력과 국방력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단연 최상위권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서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은 차치하고, 이제 우리나라의 위상과 수준에 걸맞는 국가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주변국들을 좀 더 너그럽게 포용하고 안아 주면서 함께 손잡고 공존·공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성숙한 민주 국가·경제 대국·정치 발전 국가·선진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남을 탓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2019년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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