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말합니다. 몽골족 중에서 동서고금을 통틀어 우리나라만큼 성공한 예는 결코 없다고. 유사 이래 1,000번 가까운 외침을 당하고도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합니다. 다만, 남북이 두 동강이 나서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삼국통일 대업을 이룰 때 흑심을 드러낸 당나라, 고려때 몽골의 침략, 조선 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풍전등화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그 저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난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제일 먼저 내세우고 싶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당대의 영웅들이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 구국의 일념으로 애국애족의 길을 걷고, 백성들이 하나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 저력의 우리 민족은 잡초처럼 이리저리 밟혀 살아오면서도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력 등에서 손꼽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고, 1960∼70년대 ‘아메리칸 드림‘처럼 동남아로부터 ‘코리안 드림’을 낳게 했습니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얼마간 고생하면 자국으로 돌아가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갖고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피 하는, 소위 3D 업종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위상도 세계 최고의 수준까지 이르렀지만, 국민의 의식구조는 힘들게 살던 과거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과 미래지향적인 사람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질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임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뼈아픈 우리의 과거를 잊어서는 절대 안 되겠지만, 그 과거가 우리 밟은 앞날의 발목을 잡아서도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세대는 풍족하고 여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반만년 우리 역사는 얼마나 힘든 고난의 역사였습니까? 오가다 만나는 지인들에게 하는 평소의 인사말이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외적의 침입이 얼마나 많았고 한밤중에 노략질을 당했으면 아침 인사말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이고,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식사 한번 합시다.」가 일상생활의 인사말이 되었을까요?
사실 요즈음도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으레 「언제 식사라도 한번 하시죠?」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깡그리 잊는 것이 좋겠습니다. 작게는 개인이나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잊을 것은 잊고 – 아니, 뼈아픈 과거는 가슴 한쪽 켠에 고이 간직하고 뭔가 다짐하거나 필요할 때 한 번씩 꺼내 보고 –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 국민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좋지 않는 과거는 <일본>이라는 이웃 국가에 대한 증오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에 반해, 대다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각급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탓도 있겠지만, 일본인들은 태생적으로 남의 일에 대해 매우 무관심한 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초등학생만 되어도 웬만한 한국 역사는 줄줄 외우고 있지만, 일본 학생들은 큰 단락만 하나둘 기억할 뿐 우리처럼 미주알고주알 배우질 않는다고 합니다. 양 국민이 너무나 대조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저지른 과거 만행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우리의 잣대로 마주하게 되면 협상이나 타협은 늘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경제 대국으로서 선진국이 되었고, 코로나-19에서 모범 방역국이 되었으며, 우리 영화나 K-팝 등 한국 열풍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좀 더 의젓하고 어른스러워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한번 제대로 되돌아보면서 개구리가 몸을 움츠리는 참뜻을 되짚어보고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여유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아우에게 형 노릇 잘하려면 참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어야 하듯이 지금은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나라 만들기에 우리 모두 심혈을 기울어야 할 때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주었던 과거의 쓰라린 고통을 잊기는 힘들겠지만 지난날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 지나치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하나하나 대응하지 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좀 더 의젓해질 때 일본은 우리의 태도를 보고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게 ‘지난 과거를 사과하라’고 백번 천번 말하는 것보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고 앞서간다면 일본은 언젠가 반드시 우리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입니다. 정말 대내외적으로 힘을 길러 비축해 갈 때야말로 일본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우리의 위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지금은 하나하나 서로 맞대응하고, 최고조의 감정싸움 선상에 있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의 국제사회적 위상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여유를 가져봄직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일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일본보다는 중국 대륙과 더 많은 교류를 해왔고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왔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유교(儒敎)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우리 생활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즈음도 유교 사상에 빠져 옛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물론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본다면 과거 우리 것이 좀 불편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보존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교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왔는지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흔히 「유교 사상」이라고 하면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먼저 떠오릅니다. 제법 배웠다는 지식인들에게, “삼강이 먼저냐, 오륜이 먼저냐?”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이 삼강이라고 대답합니다. 삼강은 유교 사상의 근본이고 오륜은 실천덕목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요?
중국 진(秦)나라가 멸망하고 그 뒤를 이은 한(漢)나라 한무제(漢武帝)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그렇게 강력한 진(秦)나라가 왜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매우 궁금하였고, 그 원인을 알 수 있다면 한(漢)나라 통치기반 조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거유(巨儒) 동중서(董仲舒)를 중용하여 연구토록 하였습니다. 동중서(董仲舒)는 20여 년에 걸쳐 진(秦)나라의 멸망 원인을 규명했는데, 그 결과는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진(秦)나라 당시엔 삼강은 없었고 오륜만 있었습니다.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 부자, 임금과 신하, 부부, 어른과 아이, 그리고 친구 간에 지켜야 할 5가지 도리를 말합니다. 이런 오륜을 뒤집어 해석한다면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면 아버지를 거세하고,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면 임금을 거세하고, 남편이 남편 노릇을 못하면 남편을 거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쳇말로 군웅이 활거하고 사회질서가 엉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동중서(董仲舒)가 착안한 것이 삼강이었습니다. 삼강은 유교 윤리의 근본이 되는 세 가지 벼리로서 군신간의 도리인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자간의 도리인 부위자강(父爲子綱), 부부간의 도리인 부위부강(夫爲婦綱)입니다. 쉽게 풀어 말한다면 임금이 임금답지 못해도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해도 아들은 아들의 도리를 다해야 하며, 남편이 남편답지 못한다고 해도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오륜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인간적이고 자유분방합니까?
그와는 반대로 삼강은 얼마나 비인격적입니까?
조선의 통치이념이 된 유교 사상은 오륜이 아니라, 이런 삼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임금은 임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자신의 연약한 존재를 지키기 위한 비겁한(?) 수단으로 삼강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도로 발달 된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좋은 점은 잘 보존하여 발전시키되,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도 또한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이제 자신을 되돌아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