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단계 : 집착 대신 집중을

by 유주얼

아예 말이 안 되는 거 알고 보는 막장 드라마보다 그럴싸한 설정과 구도로 나름의 탄탄한 논리를 가진 척하다가 갈등이 심화되고 위기가 닥칠 때면 도무지 개연성 없는 전개로 뻔뻔하게 끌고 가는 드라마를 볼 때 나는 더욱 화가 난다. 화를 내는 나에게 누군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아니! 드라마가 극적 세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목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실로 느끼라는 거고, 그래서 시청자도 그 극적 세계에 감정과 생각을 이입하는 건데, 그래놓고 중요한 대목에다 현실에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허황된 사건을 넣으면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발뺌을 하면 안 되지!”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지, 현실은 아니다. 알면서도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로만 보게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허구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알게 모르게 꽤 많은 것들을 습득한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마 섹스에 대해서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물론 남자들의 경우엔 포르노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접했겠지만,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통해 섹스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짜맞추기 식으로 알아갔을 것이다.

우선 포르노부터 얘기해보면, 해악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실용적인 면에서 아무 가치가 없다.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성교를 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여자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성 구매자를 최대한 자극하고 흥분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포르노는 현실과 다른 특이한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갖가지 행위 중에 실제로 여자들이 성교 시에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거의 없다. 게다가 영상 속 남자들의 외모는 그 영상을 보고 있는 남자의 실제 신체와는 사뭇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포르노에서 봤던 대로 흉내내보려 했다가는 상대에게서는 분노와 짜증을, 자기 자신에게서는 부끄러움만 얻기 십상이다.

실용적이지 않기로는 영화나 드라마의 베드신도 포르노 못지않지만, 어떤 장면은 포르노만큼의 성의도 없다는 비난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제멋대로다. 하긴 잘 생기고 돈 많고 성격 좋고 똑똑하고 유머러스하고 낭만적이며 싸움도 잘하지만 정의롭기까지 한 남자가 버젓이 존재하는 드라마 속 세계에서 섹스인들 오죽하랴.

극 중 사랑하는 두 남녀가 벌이는 정사 장면은 대부분 환상적이고 만족스럽게 묘사된다. 의도적으로 어떤 인물의 찌질함과 한심함을 보여주거나 불화나 갈등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파티에서 눈이 맞아 허겁지겁 달려드는 그저 하룻밤의 관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애틋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함께 들어가는 이불속, 짜릿한 밀당 끝에 마침내 불타올라 침대 위로 쓰러지는 두 남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부부의 달콤한 첫날밤... 이 모든 정사의 결말은 행복하다.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서 아직 침대에 알몸으로 누워 하얀 이불을 끌어안고서 만족한 얼굴로 눈을 부비는 여자가 있고, 그런 여자를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안아주는 남자가 있다.


정말일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모든 성교가 만족스러울까?

오! Power of Love, 사랑의 힘은 정말로 위대해서 모든 성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을까? 심지어 원나잇스탠드마저?

그럴 리가 없다.

처음으로 맞추어보는 합인데 그렇게 잘 맞을 리가 없다.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패션 감각이 일치할 리 없고, 유머 코드가 다 맞을 리 없으며, 식성과 입맛이 같을 리 없는 것처럼, 무조건 섹스가 잘 맞을 리는 없다.

원했던 사람과 하는 성교니까 좋을 것이고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사귐에서 대화가 재밌게 잘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이상하게 삐걱거릴 때도 있고, 나는 신나게 놀고 싶은데 상대는 조용히 쉬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섹스도 그렇다.

잘 될 때도 있고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서로를 알아가고 맞추어가는 과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간혹 처음부터 굉장히 잘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그날 그날의 감정과 몸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한 번의 성행위에 너무 큰 기대를 갖거나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섹스를 할 때에는 특정한 의도를 갖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확인해보겠다든가, 반드시 오르가즘을 느끼겠다든가,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든가 하는 식의 목표는 버리는 게 좋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 재현될 거라고 믿지 않는 게 좋다.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어떤 기대치도 갖지 않는 게 좋다.


다만 ‘지금, 여기’에만 집중한다.


섹스는 두 사람 간의 가장 깊은 소통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대화의 방향을 의도하거나 목표를 세우거나 기대치를 설정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될뿐더러 역효과만 나는 이치와 같다. 집중할 뿐이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장 깊은 소통이 언제나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상대의 옹졸한 이기심을 보게 될 수도 있고, 오래된 상처를 만지게 될 수도 있으며, 감추어진 어둠을 느끼게 될 수도 있고, 따뜻한 영혼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만일 너무나 악한 기운을 만나게 된다면 미련 없이 헤어져라)


하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해서 손 놓고 방관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성교의 과정을 내 마음대로 끌고 가려는 태도만큼이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가 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태도도 어리석다.

나의 몸과 성기를 어루만지며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면 두 사람의 성교에서도 그 훈련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벌거벗은 두 존재가 만나서 결합하는 과정은 절대 서두를 일이 아니다. 나와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느끼면서 여유를 갖고 천천히 진행한다.


다만 여기서 어려운 점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양쪽 모두를 살펴야 한다는 것인데, 항상 출발은 ‘나’부터다. 상대보다 내가 더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나부터 시작하는 게 수월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열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열려있는 상태여야 한다.


나의 감각이 올올이 다 살아있을 때 상대의 감각도 예민하게 포착할 수가 있다.


그리고 상대의 감각과 나의 감각이 따로따로 별개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혹시나 이런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몸을 마음껏 어루만지는 내 손길에 길들여졌다가 상대가 해주는 게 성에 차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안심해도 좋다. 그런 일은 없다. 내 손으로 내 몸의 모든 세포를 일깨워 살려놓으면 상대가 그냥 살짝 건드리는 손길에도 전율을 느끼게 된다. 만의 하나, 상대가 만족스럽게 해주지 못했다면 다른 기회에 내가 나를 만족시키면 된다. 꼭 남이 해주는 것으로만 만족을 얻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감각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진행한다는 것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내 몸이 움직이고 싶어할 때까지, 내 마음이 뭔가를 일으킬 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된다. 결국은 몸이 알아서 할 것이다. 믿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면, 서로 마사지를 해주면서 시작하기를 권유한다.

마사지는 특별한 기술 없이 그냥 쓰다듬는다는 생각으로 하면 되고, 천연성분의 오일을 사용해서 기분 좋게 문질러준다는 느낌으로만 해도 된다.

역시 원칙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한없는 여유를 갖고 상대의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져주면 된다.


섹스라는 자연에는 딱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신박한 테크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말하는 '속궁합'이 있어서 저절로 잘 맞는 짝이 있다는 설도 나는 믿지 않는다. (물론 물리적으로 적합한 조건은 있을 수 있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 있어도 내내 사진만 찍어대며 깊은 호흡 한번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뭇 생명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됨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섹스라는 자연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섹스는 자연이기에 모든 성행위가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면서도 순간 그 행위에 집중해야 한다.

농사를 지으면서 결과를 보장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과 같다. 집중할 뿐이다.


헷갈리면 안된다.
'집착'이 아니라 '집중'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얻은 비현실적인 기대나 환상은 집착만 만들어낼 뿐 집중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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