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끼리 모인 작은 워크숍에서 자신의 생식기를 거울에 비춰 관찰해보고 솔직한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오기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일주일 후에 만났을 때 아무도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대부분 자기의 음부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고 했고, 몇몇은 슬쩍 보기는 했는데 그림으로는 못 그리겠더라고 했다. 슬쩍 봤더니 매우 흉했다, 징그러웠다는 게 이유였다. 차마 보지 못한 사람들 또한 그 부위가 추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 추한 모습을 확인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의 생식기를 똑바로 들여다본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생식기에 대해 이와 같은 수치심이 존재한다면 마땅히 없애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생식기란 남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고 보여줘서도 안 되는 부위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지만, 여자의 젖꼭지 또한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는 부위일지라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젖꼭지를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지는 않다는 걸 생각해 볼 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생식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생겨날 수 있으나 대부분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성욕 때문이다. 성욕이 거절당했거나 채워지지 못했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되면 수치심이 생긴다.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했다가 거절당하면 아무래도 창피한 감정을 느끼는 이치와 같다. 10을 원했는데 5밖에 받지 못해도 그렇고, 내가 원한 것과 다른 것을 받게 되어도 그렇다.
욕망이 순조롭게 채워지지 않으면, 그 욕망 자체는 환영받지 못한 욕망, 부끄러운 욕망이 된다. 게다가 유교적인 사회 분위기에서는 성욕을 ‘밝힌다’는 게 욕먹을 짓으로 규정당하지 않았던가.
이론적으로는 생식기가 소중한 기관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지식만으로는 자신의 음부에 대해 근거 없이 생겨난 부정적인 감정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생식기는 사전에 등재된 공식적인 이름이며 영어로는 Organ of Generation이다. 뜻을 따르자면 생식기는
개체의 후손을 생산해내는 것이 주어진 역할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곳에 쾌감이 발달해 있고, 하필 그 민망한 곳에 연애나 사랑 감정이 연루되어 욕망이 생겨나며, 게다가 그 욕망이 만족스럽게 채워지기도 힘들게 생겨먹었느냐 말이다.
호흡기관은 호흡만 하면 되고 소화기관은 소화만 하면 되고 배설기관은 배설만 하면 되는 것처럼 생식기관은 생식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왜 유독 생식기에만 생식 이상의 차원이 더해져 있을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생명 활동의 다른 영역인, 호흡, 소화, 순환, 배설 등은 개체의 한 몸뚱어리 안에서 자체 해결된다. 그러나 생식만은 혼자 할 수가 없다. 반드시 두 개체가 만나야만 (최소한 난자 정자의 형태로라도) 생식은 이루어진다. 그것도 서로 다른 성(性)이 만나야만 생명을 탄생시킬 수가 있다는 이 자연법칙은 매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다.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창조 중의 가장 위대한 창조, 신비 중에 가장 놀라운 신비다. 힘으로 치면 가장 어마어마한 힘이다. 인공지능과 자동차의 자율주행과 각종 기능적 로봇을 만들어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인류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섹스가 얼마나 위대하고 신비하고 놀랍고 어마어마한 에너지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창조'의 에너지, 인간이 후손을 ‘창조’하려는 욕망의 근원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단순히 날 닮은 자식을 낳아 길러서 잘 사는 모습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노후를 의지하는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만 성숙한 부모라면 내 자녀가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을 하길 바란다. 그것이 자녀를 낳아 키우는 목적이다. 내 후손을 통해 세상이 진보되기를 원한다.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지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선한 흐름이 생겨 이상향을 향해 조금이라도 진화되기를 바란다.
궁극적으로 섹스는 ‘나’를 확장함으로써 세상을 진화시키고 싶은 갈망이다.
나를 확장하고 확장하고 확장하면 ‘나’는 없어진다. 그 경지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참된 나의 본성을 만날 수 있다. 반대로 가도 마찬가지다.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가면 우주를 만난다.
결국 섹스가 가고자 하는 곳은 해탈이며 깨달음이다.
<시바의 링감과 요니 Shiva lingam and Yoni> 아시아 문명 박물관
(사진 속 유물은 베트남 메콩 델타 지역에서 발견된 9세기 석조조각으로 링감(lingam)은 남자 성기를, 요니(yoni)는 여자 성기를 뜻한다. 남자 성기에 신(神)의 얼굴이 겹쳐 새겨져 있다.)
다시 생식기로 돌아와 보자. 생식기는 이러한 창조의 에너지, 즉 섹스가 출발하는 곳이다. 실제로 자식을 낳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삶의 진화를 꿈꾸는 에너지가 생성되는 곳이다.
진화는 혁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혁신은 새로움을 향한 도전으로 이루어지며, 새로움을 향한 도전이란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다.
낯선 세계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다. 타인이란 나와는 너무도 다른 완전히 낯선 우주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강한 끌림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식기에는 쾌감과 욕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성욕으로 끌려야만 낯선 세계로 들어가 나를 확장할 힘이 생긴다.
생식기에 존재하는 창조력의 씨앗이 자기 길을 찾아 영적인 성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욕을 연료삼아 음과 양이라는 이질적인 두 개체가 만나도록 해야한다. 음양의 결합은 땅과 하늘의 결합과 같다. 에너지의 변화가 일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창조의 에너지, 성장의 에너지, 해탈의 에너지가 생겨난다. 생식기가 연애와 사랑의 감정에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 소개한 <나의 몸 어루만지기>를 해보았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생식기도 함께 터치해본다. 스스로 원하는 대로 부드럽게 시작하면 된다. 자신의 성기, 자신의 음부가 욕망하는 쾌감은 결국 영적인 차원으로 성장하여 승화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다면 그 어떠한 행위도 부끄럽지 않게 된다.
다음의 다섯 가지 지침만 잘 지켜서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신의 성기와 음부를 어루만져 보자.
< 나의 생식기 어루만지기 >
1. 방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가능하면 커튼이나 조명, 꽃 등으로 아름답게 꾸민다.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향을 피우거나 초를 켜놓는 간단한 리추얼(ritual)을 하면 더욱 좋겠고, 2~3분 정도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2. 구체적인 인물이나 상황을 상상하지 않는다. 남이 해준다고 상상하지도 말라. 터치하는 물리적 느낌 자체에만 집중한다.
3. 최대한 느리게 천천히 진행한다. 쾌감의 배설을 서두르지 말고 아주 미세한 느낌까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즐겨본다.
4. 부드러운 깃털 같은 도구나 오일이나 젤을 사용해도 좋지만, 바이브레이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인공적인 진동에서 쾌감을 얻는 것은 좋지 않다.
5. 자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자의 경우는 음핵(Clitoris)의 절정(Clitoral Orgasm)까지 갈 수 있고, 남자의 경우엔 사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 쾌감의 전율이 배를 타고 올라와 가슴까지 전해지는지, 가슴에 어떤 느낌을 주는지 집중해보고 그 느낌을 깊이 음미해본다.
이렇게 얻어지는 쾌감이 스스로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때는 자신의 성기를 수치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고, 나아가 그 모습에서 신비로움과 신성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