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자기 몸에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늘어진 뱃살, 축 쳐진 엉덩이, 구부정한 어깨, 틀어진 골반, 부은 다리, 튀어나온 혈관들... 한숨만 나오게 하는 흉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내가 아닌 내 몸을 원망한다. 마치 내가 그림을 그려놓고서 그림 스스로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탓하고 있는 꼴이다.
내 몸이 어떠하든 지금의 상태가 된 것은 살아남기 위해 무진 애를 쓴 결과다. 나는 내 몸을 나쁜 자세로 고정시켰고 나쁜 습관을 들였고, 몸에 나쁜 줄 알면서도 안 좋은 음식들을 마구 먹였으며,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고, 내 몸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들었고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몸은 어떻게든 파국에 이르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악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찾다가 그 결과 살도 찌고 뼈도 굽고 관절도 약해지고 근육도 뭉치고 병도 생긴다. 그런데도 나는 몸의 노력을 몰라준 채 한심하게 여기면서 오히려 화만 냈다. 하지만 몸은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이만큼 존재해주었다.
거울 속 벌거벗은 내 몸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몸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이만큼이라도 살아주고 있는 몸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 해야 한다.
그래서 섹스도 먼저 몸에서 시작한다. 섹스의 모든 문제는 나의 몸을 회복시키는 데에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다. 몸이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를 따진다면 어느 쪽이든 ‘먼저’가 될 수는 있는데, 어느 쪽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몸으로 먼저 접근하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뭔가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 때문이다.
섹스가 몸의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섹스에서 중요한 건 내 몸이 아니라 남의 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남의 몸이 내 몸에 뭔가를 해주는 게 섹스라고 이해했기 때문일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한 오해다. 물론 상대를 잘못 만나 괴로운 섹스를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섹스의 동기나 의도, 과정과 결과를 전부 상대에게 맡겨버렸다면 그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즐거운 섹스가 될지 고통스러운 섹스가 될지를 상대에 손에 넘겨 준다면 내가 나를 노예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중요한 건, 섹스의 즐거움은 '나'의 몸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내 몸의 상태가 섹스의 결과를 좌우한다. 만일 전박적으로 섹스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의 책임이 아니다.
따라서 내 몸과 소통하는 것이 섹스의 시작이다. 내 몸과 내가 소통해야만 성욕이 무엇을 말하는지 선명하게 들을 수 있다. 소통의 물꼬를 트면 점점 더 잘 통하게 된다. 나의 몸과 마음, 내 존재가 막힘없이 통할 때 그 흐름 속에서 섹스도 본성을 발현하게 된다.
소통을 하려면 먼저 화해를 해야 한다. 이제껏 내 몸을 원망하고 구박하기만 했으니 사과하고 풀어주고 위로해줘야 한다. 진정어린 화해가 필요하다.
내 몸과 화해하는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뼈 명상>과 <나의 몸 어루만지기>인데 둘 다 특별한 기술 없어도 되는 쉬운 방법이지만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은 반드시 필요하다.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택하여 혼자 눕는다. 실내 온도를 따뜻하게 맞추어 옷을 모두 벗을 수 있다면 좋은데, 정 불안하다면 헐렁하고 편한 옷을 입어도 되겠다. 단 이 경우에도 속옷은 입지 않는다.
잡념을 내보내고 몸에 집중하는 방법 중에 비교적 쉬운 '뼈 명상’부터 시작한다.
< 뼈 명상 >
골반부터 시작한다. 뼈의 위치와 존재, 중력, 혹시 가능하다면 모양을 인식한다.
골반에 집중하고 천천히 내려가 고관절, 대퇴골, 무릎, 종아리뼈, 발목, 발등과 발꿈치와 발가락뼈를 인지한다.
골반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번엔 요추, 흉추, 경추를 차례대로 타고 올라가 두개골까지 인식한다.
두개골에서 다시 약간 내려와 쇄골, 어깨뼈, 윗팔뼈, 팔꿈치, 아래팔뼈, 손목뼈, 손가락뼈를 인지한다.
이 모든 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認知)한다.
나의 몸 어느 부분도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올 것이다. 하나로 연결된 느낌 그대로 호흡한다. 들숨과 날숨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숨 쉬면서 온몸이 함께 반응하는 것을 느낀다.
만일 여기까지도 수월하게 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내 몸을 갖고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에이씨, 왜 안 느껴져!” “아, 몰라! 뭐라는 거야. 안돼!” 이런 태도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이 하나임을 못 느끼는 이유는 어딘가 막혀있고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몸을 더욱 달래주고 다독이는 마음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다음 단계는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인데,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터치를 하면 된다. 아주 여리고 천사 같은 아기를 만져주는 손길, 혹은 갓 태어난 새끼강아지를 예뻐해 주는 손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스스로 자기 몸을 쓰다듬어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따져보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나 필요한 일이다. 비싼 값을 내고 아로마테라피를 받으며 기분 좋아하거나, 차마 말은 못 하고 속으로만 나의 파트너가 해줬으면 바라기는 해도, 내 손으로 내 몸을 사랑해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내 몸을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 몸을 사랑한다는 참 의미는 멋진 근육을 만들어서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돈을 들여서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라인을 만드는 일처럼 ‘남들’의 기준과 ‘남들’의 욕망을 쫓아가는 데에 있지 않다.
몸을 어루만질 때에 주의할 점은, 손으로 느껴지는 내 몸을 평가하지 말고, 내 몸이 손길을 받아들이는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 진짜 거칠거칠하네.” “살이 왜 이렇게 많아.” 하는 식으로 내 몸의 상태에 트집 잡지 말자.
사랑이 가득한 나의 손길을 그대로 느끼며 즐긴다.
사실 내 손보다 나를 더 사랑해줄 수 있는 손은 없다. 최고급 스파에서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돈을 벌기 위해 남의 피부를 만져줘야 하는 그 터치에 내가 내 몸을 아껴주는 손길보다 더한 사랑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나의 몸 어루만지기 >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몸을 어루만진다. 몸을 쓰다듬는 데에 정해진 순서나 방법은 없다. 손이 가는 대로 가도록 두면 되지만 소외되는 곳 없이 골고루 쓰다듬어 준다. 특히 내가 열등감을 느끼거나 맘에 들지 않는 신체 부위가 있다면 더욱 정성으로 어루만져 준다.
최소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할애한다.
나의 몸 어루만지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초보적인 화해 방법인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너무도 중요하고 또 그 효과는 확실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기를 권유한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런 강요도 하지 말고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말고, 무조건 사랑과 정성으로 쓰다듬어 주면 된다. 사랑받는 사람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말처럼 사랑받는 몸이 가장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