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를 죽이고 싶은가요?

들어가는 글

by 유주얼

나도 한 때는 그랬었다. 섹스 같은 게 없다면 얼마나 살기 편할까 하고 생각했었다. 만날 때마다 번번이 섹스를 밝히는 파트너가 너무나 징그럽고 지긋지긋해서 헤어진 적도 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누군가와 섹스라는 행위를 하는 건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내 몸에 여전히 성욕이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하는 섹스가 있기는 한데 그걸 채워줄 상대는 현실 세계에는 없을 것 같고, 설사 그런 섹스를 한다고 해도 순간적 쾌감은 얻을지언정 그것으로 인해 행복이 생겨나거나 삶의 만족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시 젊었던 나의 가치관으로 볼 때 삶에서 가장 덜 중요한 것이 섹스 같았다. 그러니 질척거리기나 하면서 문제만 일으키는 섹스라는 게 아예 말끔하게 사라져 버리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사회 속에서 내 능력을 검증받고 내 가치를 증명해 내는 일과 그 일을 통해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하는 문제, 즉 '일'과 '돈', 이 두 가지에만 우리의 모든 힘과 노력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판이다. 날이 갈수록 일과 돈의 성취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연애나 결혼도 포기한다는 최근의 풍조가 그리 놀랍지 않다. 이런 판국에 한가롭게 섹스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은 없는 게 당연한 듯 보인다. 섹스가 돈을 벌어줄 것도 아니고, 섹스가 일을 잘하게 해 줄 것도 아니고, 섹스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섹스의 성취가 중요할 수 있다. 섹스의 능력이 경쟁적 능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섹스가 돈과 일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는 자신의 매력이 드러나거나 마음에 드는 상대를 유혹하는 데까지만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섹스 자체를 능력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남자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자극만 있으면 정도야 어찌 됐든 쾌감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다. 여자의 쾌감은 단순하지 않고 쉽지 않다. 정서적 심리적 요소와 연결되어 있고 생식기 자체도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하며 쾌감이 발화되고 전달되고 증폭되는 과정이 매우 심오하다. 그래서 여자는 섹스의 즐거움을 알기 전에 고통부터 알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다. 여자가 섹스의 즐거움을 알려면 자기 몸과 마음에 대해 세심하고 깊게 다각도로 탐구해야 하고 그 탐구에는 서두름 없는 충분한 시간과 조급함 없는 느긋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상에서 밥 먹고 걸어가면서 커피 마시고 밤잠 줄여서 일해가며 성공과 돈을 향해 숨차게 달려가면서, 그 와중에도 트렌드는 쫓으면서 남들 하는 만큼 가보기도 하고 먹어보기도 하면서, 했으면 했다고 사진 찍어 올려 자랑까지 해줘야 하는 이 바쁜 세상에서, 누가 어떻게 그런 한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섹스에? 왜?


아마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은 비율로 섹스를 없애고 싶을 것이다. 연애는 해도 스킨십은 싫은 여자, 스킨십은 해도 섹스는 싫은 여자, 상대를 배려해서 섹스를 하기는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은 여자, 즐겁지 않은데도 거짓으로 좋은 척해주는 착한 여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눈치 볼 것 없이 대놓고 섹스를 거부하는 여자, 모두 전혀 드문 경우가 아니다. 흔하고 참 많다.


그런데 "나는 이제 섹스 안 해."라고 선언했다고 해서 섹스를 없앤 것일까? 섹스가 싫어서 섹스를 안 하겠다 선언했고 안 하고 싶은 게 확실한데, 에로틱한 영화 장면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가끔씩 엉뚱한 때와 장소에서 성욕이 불쑥 튀어나오고 당혹스럽게 야한 꿈을 꾼다거나 하면, 괜히 나 자신이 한심해지기도 하고 왠지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섹스는 내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의지로 누르고 집념으로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카톨릭 신부님이나 불교의 스님도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종교적 계율을 지키기 위해 평생 고통으로 안고 고행하며 가는 것이지 결단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심한 말로 생식기를 잘라도 안된다. 영화 <파리넬리>를 보면 변성기를 막기 위해 성기를 제거한 카스트라토가 섹스를 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장면이 나온다. 섹스는 어떤 방법으로도 죽지 않는다. 섹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섹스를 통과(通過)하는 것이다.


섹스를 온전히 경험하고 지나가야만 섹스와 결별할 수 있다. 섹스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아니라면 힘으로 막 몰아내서 어떻게든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온전하게 없애려면 순리에 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

꽃이 지려면 먼저 피어야 하듯이 섹스가 죽으려면 먼저 활짝 피어야 한다. 온몸으로 섹스를 겪어야만 섹스는 끝이 난다.


섹스를 관통하지 않겠다면 외면하는 수밖에 없다. 있는데도 없는 척 외면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섹스를 외면하면서 오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나는 괜찮다며 정신승리를 한다 해도 억제되고 억제되어 온 나의 섹스는 몸과 마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유 없는 짜증, 채워지지 않는 공허, 과도한 식탐이나 소비욕, 원인 모를 통증과 피로감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섹스는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유지하는 힘이다. 섹스가 없다면 세상은 사라진다. 이것은 명백한 자연과학이다. 내가 이 세상에 속한 생명체인 이상, 땅과 하늘과 공기와 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자연에서 취한 음식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자연의 존재인 이상, 섹스로부터 공짜로 벗어날 길은 없다. 통과해야만 한다. 관통해야만 한다. 그러면 섹스는 저절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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