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남매를 팽개치고 조지아로 토낀 엄마의 최후

아침 먹다가 울고 있다.

by 행복해지리




1화. 비행기에서 내게 토한 그놈을 시작으로 조지아 여행기를 연재 중입니다.







"나 여행 가도 돼? 한 열흘쯤"

어떤 밑밥도 없이 뜬금없이 던진 공격에 남편은 당황하지 않고 빈틈없이 대답했다.


"가"


"진짜?"


당연한 반발을 예상했다.

그에 대비해 다양한 버전의 설득 시나리오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싱겁게 허락이 떨어져서 준비한 시나리오가 필요 없어질 줄이야.

기쁨보다 당황스러움이 먼저였다.



잠깐, 가도 된다고?

진짜?

올레!





막상 여행을 가려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역시 아이들이다.

이제 4살 7살 아이들이 열흘이나 되는 기간 동안 엄마가 없는 동안 보고싶다고 찾으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엄마 보고 싶다고 꺼이꺼이 울다가 지쳐 잠드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미움이 자라면 어쩌지 싶어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도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 많고 소심한 내가 낯선 나라 조지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함께하는 일행들의 추진력과 이끌어줌 덕분이었다. 정말 여행 경비를 결제하는 수고 외에 아무런 기여도 없이 몸만 따라나서는 여행이었기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았다.


가자.

아이들에게는 엄마 말고 아빠도 있고, 그녀들도 있으니깐.

사실 어린 남매를 두고 비행기 탈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남편 말고도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딸을 대신해 남매의 양육을 온 힘을 다해 도와주시는 울엄마 이여사. 더불어 남매 양육의 1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는 이모 서포터즈가 있었기에 감히 열흘 이상 여행 갈 용기를 낸 것이다. 먹고 자는 대부분은 외할머니가 맡아주셨기에 엄마의 부재가 가능했다. 고맙게도 남매는 애미 이외에도 아빠, 외할머니, 이모들에게 애착 형성이 잘 되어 있어서 분리불안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어린 남매를 두고 떠나야 하니 양심껏 다양한 준비를 했다.

먼저, 냉장고에서 바로바로 먹을 수 있도록 국을 우유팩을 이용해 얼려두었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도록 종류별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날 낮 시간에 아이와 놀거리가 될 공연을 예매하고, 가볼 만한 곳을 섭외해서 스케줄표를 만들어두었다.

럭키박스처럼 소소하고 재미난 장난감을 넣어둔 선물상자도 만들어두고 나서야 떠날 수 있었다.


애미의 걱정과 달리 다행히도 남매는 엄마 없이도 울지도 않고 잘 지내주었다. 잘 지내고 있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아이들이 동요될까 통화는 하지 않은 채 메시지와 사진으로만 소식을 주고받았다.





셀카 삼매경


출산과 동시에 오직 아이들을 향했던 카메라는 오래간만에 셀카 기능으로 사용됐다.

원래도 꾸미는 것에 게으른 사람이라 결혼 전에도 대단한 치장은 없었다.

출산 이후에는 아이들을 핑계 삼아 더 신경 쓰지 않고 늘 질끈 묶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다녔다.

덕분에 물기라고는 남아있지 않는 푸석푸석한 피부에 생기 없는 얼굴, 편리함을 내세운 추리한 차림이었으니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내가 봐도 볼품이 없었다. 그래서 남매와 함께 찍은 사진도, 혼자 찍은 사진도 수년간 남긴 것이 없었다.


낯선 이국의 땅에 혼자다.

남매를 잡고 다니던 양손이 자유로우니 여유롭게 셀카를 찍어댔다.

사진 속에 난 오래간만에 생기가 돈다.

조지아 여행은 오랜만에 나를 나로 살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매 순간 아이들을 잊고 신나던 철없는 애미
늘 양손에 아이들을 잡고 있던 손으로 셀카 삼매경에 빠졌다.
전투력 상승을 위해 육아하는 동안은 매일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여행 동안에는 머리 묶은 사진이 없다.






여행을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아침.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에서 여행 후 처음으로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

엄마 !




여린 딸의 목소리에 부르릉 눈물 터졌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여행하는 것이 마냥 즐겁고 홀가분하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보고 싶고 안아보고 싶은 우리 딸.


그런데 또 전개가 예상 밖이다.


"엄마 ! 엄마~! 어디야?"

(엄마 대답도 듣지 않고)

"엄마~! 나 만화 봐야 해."


뚝!


솟아나던 눈물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쿨내만 남기고 보이스톡을 끊어버린 따님.

세상 씩씩하게 지내주니 고맙기도 하고 엄마를 찾지 않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에 잠시 멍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우리 모녀는 아주 끈끈하다 ㅋ 현재도 이상무)






다시 레드썬 !

따님의 쿨내 덕에 다시 여행 모드로 전환한다.

오늘은 므츠헤타로 향한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므츠헤타는 차로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근교도시다. 트빌리시가 고르가살리 왕의 매사냥 에피소드로 인해 수도가 되기 전에는 이곳이 수도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도시로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느낌이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სვეტიცხოვლის საკათედრო ტაძარი


이곳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입고 있던 로브가 묻힌 곳이라 전해진다.


므츠헤타 출신의 엘리아스가 예수의 십자가형을 주관한 로마 백부장으로부터 예수의 로브를 사서 조지아로 돌아왔다. 그의 누이가 예수의 로브를 보고 슬픔에 빠져 목놓아 울다가 감정이 격해져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누이가 죽고 나서 누이 손에서 예수의 옷이 떨어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로브와 누이를 함께 묻었다. 그 무덤 위로 훗날 거대한 삼나무가 자랐다.
이후 성녀 니노(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가 그 삼나무를 베어 7개의 기둥으로 교회를 짓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기둥들이 하늘로 솟아 사라져 버린다. 성녀 니노의 기도로 기둥이 다시 돌아왔고 이 나무기둥에서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는 성스러운 액체가 나왔다.


베티는 조지아어로 '기둥'을 츠호벨리는 '살아있는, 삶을 주는'이라는 뜻으로 스베티츠호벨리는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성당이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4세기 경 성녀 니노가 조지아에서 세운 첫 교회 자리에 새롭게 증축해 지은 것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지만 조지아 성당에서는 그들의 진심 어린 신앙심에 절로 경건해지게 된다.
그들의 신앙심에 누가 될까 봐 성당 사진을 찍을 땐 늘 조심스러웠다.


성스러운 곳에서 만난 사제께서 흔쾌히 관광객을 위해 사진 촬영을 해주셨다.

성녀 니노가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로부터 포도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건네받으며 조지아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아침에 울었던 거 맞니?


성당 밖으로 관광객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이 이어진다.

돌로 만든 골목과 건물에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아침에 눈물 바람이든 궁상은 사라졌다.

생경한 이국의 풍경에 신난 아줌마가 있을 뿐이다.



가보지 못한 보르조미를 대신해 잡아본 간판, 러시아풍 모자도 한번 써보고




이제 즈바리 성당으로 가자.





* 행복했던 조지아 여행기는 마지막 이야기까지 매주 토요일에 발행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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