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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우리집 강아지 자리를 제안했다.

by 행복해지리



사랑 듬뿍 받고, 먹을 것 잘 챙겨주고, 놀아주기만 하면 만족하는 강아지의 삶을 원하는 거야?
원하면 우리집 강아지 시켜줄게


파격적인 제안에 아들 눈이 커졌다.

강아지 자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언 듯 파악이 안돼서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과연 그의 선택은?






올해로 아들과 집공부 한지 5년 차에 접어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정은 험난했으니 이 매거진의 이름 그대로 우당탕탕이었다.

고성과 협박, 윽박과 눈빛광선이 난무해 아이는 자주 울었다.


초등 저학년은 비교적 수월했다.

학습양이 적고, 학습이라는 것이 사칙연산 정도로 가벼워서 둘 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고학년이 되니 학습량이 늘어나고, 난이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잔소리로 하드캐리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가고 아이의 의지가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결정적으로 매일 사랑하는 아이에게 공부 잔소리만 늘어놓게 되는 것도 문제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의지를 갖고 스스로 공부할래~ 아님 이쯤에서 공부 때려치우고 그저 건강하게만 자랄래~ 우리집 강아지처럼 자라는거야. 잘 먹고, 놀기만 해도 칭찬받는 강아지. "









단언컨대 난 엄청한 학습양을 밀어붙이며 아이를 공부시키는 부모는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돕는 중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20년 가까이 입시 최전선에서 아이들의 대입 과정을 지켜봤다.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에서 한해 백여 명의 아이들을 만난다.

깊게 들여다본 담임반 아이들만 해도 줄잡아 300여 명이 넘는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해도 안되는 아이들이다.

비슷한 크기의 노력을 기울일 때 어떤 아이는 되고, 또 어떤 아이는 안된다.

딴에는 힘껏 했는데 원하는 성적이 안나올 때 아이들이 겪는 좌절감은 생각보다 깊다.

반복되는 실패에서 아이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고 쉽게 본인을 탓한다.

노력했는데 매번 결과가 나쁘니깐 아이들이 좌절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오랜 시간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왜 힘껏 노력했는데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까?' 라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들여보면 조금씩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대부분 잘못된 공부 습관을 갖고 있었다.

완전학습을 위해 자기주도학습을 하기보다, 누군가 대신 공부시켜 주는 학원 수업과 온라인 강의에 의지한다.

혼자 이해할 때까지 매달려 공부하지 않는다. 지금껏 그런 공부를 해본적이 없고 그럴만한 지구력이 없다.

눈으로 읽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학습의 질보다 양을 중시한다.

(이런 방법이 중학교까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중학교 시험이 워낙 쉽게 출제되기 때문이다. 상대평가라서 대부분 중학교 문제는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는 출제하지 않는다. 참고로 중학교 A등급을 받는 비중은 수능이나 고등학교 내신으로 따졌을 때 1~4등급까지의 아이들이 모두 포함한다. A 등급에 속으면 안된다.)


중학교에 비해 학습량이 크게 늘어서 공부할 것은 많은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계속 집어넣는 공부만 한다. 사실 제대로 입력조차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입력도 소화도 못시키는 불완전한 공부로 시간을 모두 허비하고 평가를 치른다.

결과가 노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난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힘껏 노력했을 때 한만큼 얻어내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노력한 만큼 성취하며 발전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매와 집공부를 시작했다.

우리집 집공부는 자기 공부를 스스로 디자인하고, 제대로 배워서 익히는 학습(學習)하는 태도를 기르는 과정이다.

자기주도학습능력과 완전학습 태도를 지닌 채로 성장하면 그것이 대입이든, 또는 본인이 원하는 또다른 무엇을 향한 것이든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성취할 수 있는 아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내 비전을 기회가 될 때마다 아이에게 전달한다.

분명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당개도 3년 차가 되면 귀가 트이는 법.

이제는 어렴풋 엄마의 잔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듣는 눈치다.


그래서 였을까?

고맙게도 아들은 우리집 강아지 자리를 거부했다.

자기 나이에 맞는 공부를 하고 성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금하는 공부는 본인의 몫이고 스스로 노력해야 제대로 얻을 수 있다는 기특한 멘트도 남겨주셨다.


이제는 아들의 선택을 협박 카드로 사용한다.

발라당 드러누워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우리집 강아지 자리 아직 비어있어~!'라고 하면 제까닥 움직인다.

주섬주섬 아들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실 식탁에 앉는 아들이다.





(강아지사진출처:픽사베이)






* 사교육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지금도 큰아이는 영어과외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직접 아이 셔틀을 되서라도 적극적으로 사교육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시시콜콜한 집공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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