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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01. 2024

내향적인 건 잘못이 아니야.

 

언니, 내향적인 성격이 잘못이 아닌데 왜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임상심리전문가 동생의 말입니다.

동생은 주로 20대 젊은 내담자들을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

아직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대학생, 또는 이제 갓 사회 초년생이 된 앳된 어른들을 마주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담자들 중 내향적인 성격이 싫어서 타고난 기질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합니다.


내향적인 건 본인의 기질인데, 이건 나쁜 게 아닌데 왜 받아들이지 않고 고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동생의 질문으로 인해 그동안 제가 지니고 있던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저도 한 소극 합니다.

MBTI 검사에서 단 한 가지 질문도 E 성향을 체크하지 않는 극 I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보다 주로 혼자 편히 쉬는 게 맘 편한 스타일입니다.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게 되기까지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합니다.

여태껏 살면서  스스로 손을 들어 발표를 해본 적이 없고, 자발적으로 내가 해보겠다고 용기 내어 역할을 맡아본 적도 없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해볼까'하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도저히 용기 내어 나서지 못하고, 절대로 입이 떨어지지 않아 늘 망설이다가 끝이 납니다.

이런 모습이 싫었어요.

'참 못나다. ' 생각했며 자책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나와는 달리 어디서도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기 목소리는 내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구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향적인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노력했지만 벽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은연중 내 아이도,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도 내향적인 성격을 갖은 아이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며 도움인 척하며 어줍지 않은 조언을 많이 했습니다.

내향적인 아이들에게 무언가 방법을 제시했다는 건 이미 현재의 성격을 새로고침해야 한다는 뜻을 전제로 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니 후회가 됩니다.


학창 시절, '나도 반장이 해보고 싶다' 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스스로 입후보하지 못해서 늘 친구들이 추천해 줘야만 선거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새 학기가 되면 남매에게 학급 임원 해볼 생각이 없는지 묻고, 없다고 대답하면 왜 해보지도 않고 주춤하냐고 핀잔을 주곤 합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하고 싶던 꾸짖음을 애꿎은 아이들에게 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조용한 성격이 못내 고민인 학생들을 만나면 버거워할 것을 알면서 학급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하나씩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그게 그 친구에게 앞으로 나아가는 도전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역시 내 성격으로는 무리구나 자책하게 만드는 아픈 기억을 남겼을까요.


그렇게 반성을 하고 있을 무렵, 아영이와의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영이는 여러 사람과 두루 사귀기보다는 친한 친구들 몇몇과만 교류하는 편입니다.

특히 어른 사람과 대화를 어려워합니다.

성격상 낯가림도 심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는 마음 때문에 말할 때마다 신중하게 행동하다 보니 더욱 조심스러워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고민이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아영이의 꿈은 교사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멋지게 수업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 자신은 발표할 때마다 개미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싫다고 했습니다.

낯선 친구와 사귀는 과정이 매번 힘든데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만나서도 이런 성격이 문제가 될까 봐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앞선 저였으면 이번참에 성격을 개조(?)해보자고 달려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성적인 것은 나쁜 게 아니라는 걸 배웠으니 저도 바뀌어야죠.


아니야, 내성적인 건 고쳐야 할 점이 아니야.
그저 아영이 너의 기질이지.
그건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야.
오히려 신중하고 진지하게 사람과 사귀게 되니깐 아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야.
선생님도 교사 처음 됐을 때 아이들 눈 맞추고 수업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 뒤에 있는 사물함을 쳐다보면서 수업했어.
사물함과 아이컨택하면서 사람과 한 척하면서 수업했다니깐.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많이 자연스러워졌는데 아직도 학기 초에는 어색해.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성적인 건 고쳐야 할 문제점은 아니야.
걱정 마.


제 말을 듣던 아영이는 울었습니다.

지금껏 내성적인 성격을 탓하며 혼자 고민이 많았는데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니 자신이 인정받는 기분이라면서 안도감이 든다는 겁니다.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동안 맘 고생했던 것이 안타깝기도 해서 한동안 토닥토닥 눈물을 흘리도록 두었답니다.



내 아이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쳐주고 싶으신가요?

목소리 크고 앞장서는 아이들이 더 부러우신가요?

내향적인 성향은 기질입니다.

아이 그 자체를 인정해 주세요.

세상에는 조용한 리더십으로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도 많습니다.

따듯한 포용으로 사람들을 돕는 선한 영향력을 갖은 사람도 있고요.

어쩌면 내향적인 내 아이는 세상을 따듯하게 비추는 등불 같은 사람이 될 인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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