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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Sep 09. 2024

연석이 네 이놈



먼저 출근한 남편이 전화를 했다.

사고 났어

가슴이 철렁 내렸다.

전해진 말이 단 네 글자뿐이라 목소리에 담긴 내막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많이 다친 건가?

놀래서 당황스러운 건가?

어디서 사고가 난거지?

10분이면 어디쯤 갔으려나

찰나에 퍼드득 짧은 생각 몇 개가 스쳤다.


어디야?

얼마나?

내 물음이 걱정이 묻었다는 걸 느꼈는지 그제사 남편은 다치지 않았고 차끼리 부딪힌 사고가 아니라고 정정해 줬다.

그럼 무슨 사고란 말이지?


편의점에 가려고 차를 바짝 인도에 붙여서 정차했는데 그때 도보블록 연석이 유난히 삐져나와 있었던 모양이다.

연석 모서리에 타이어가 찢어졌단다.

별일 아니구나.

순간 긴장해서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풀어놓으며 한숨이 새었다.

어찌나 다행인지.

다치지 않았고 큰 사고도 아니니 '되었다, 괜찮다'는 말을 연거푸 뺃었다.  

그런데,

그제사 생각이 든다.

왜 편의점에 간 거야?

아침도 든든하게 챙겨 먹였고, 가면서 마시라고 정성스레 해죽순꽃봉오리차까지 (그래 무려 해죽순꽃봉오리차란 말이다) 야무지게 들려 내보냈는데, 굳이 바쁜 출근길에 왜 편의점을 갔단 말인가.


근데 편의점에 왜 갔어?

바쁜 아침에 살게 뭐가 있어서?

물으면서 스스로 대답을 찾았다.  

남편은 요즘 같은 시대에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흡연자다.

굳이 시간 내서 꼭 사야만 했던 것인 바로 담배였던 것.


앞서 일주일 전에 딸내미께서 무려 100만 원짜리 교정기를 잃어버려서 눈물을 머금고 재 제작을 했더랬다.

50만 원.

또르르.

그런데 일주일도 안돼서 이번에는 남편이가 원수 같은 담배 사러 갔다가 타이어를 해 먹었다.

찢어진 건 하나여도 앞바퀴 둘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

36만 원.

또르르.

그런데 화가 나지 않는다.

큰 사고 아니라서 다행이고, 다친데 없으니 되었다 싶다.


처음 들은 이야기가 '타이어 터졌다', 였다면.

'담배 사러 왔다가 사고 났어. '였다면 버럭 화가 났을 터였다.

'사고 났어. '로 놀라고 고작 타이어라는 말에 안도하고 나니 돈이야 어찌 되었든 괜찮다 싶은 거다.


마음이 알랑스럽다.

같은 상황인데 마음먹기 따라 이리 다르다.

그리하여 되감아 본다.

얼마 전 동료에게 느꼈던 짜증은 그럴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에어컨 고장 나서 사무실이 후텁함 탓일까

출근길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차는 그 갑자기 끼어들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지각할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난 내 마음 탓일까


보다 여유있는 삶을 사는 방법,

기왕이면 일상 속에 소소한 행복으로 누리고 방법,

그건 다름은 아닌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늘도 작지만 퐁당퐁당 놓여진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넓혀본다.







유연석 배우님, 전혀 상관없는 사진 가져와 죄송해요

칠봉이도, 구동매도, 안정원도 모두 소화하는 유연석 님.

진심 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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