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매니저로 일하다 보면 듣는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곤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엇갈리는 정보가 생각을 흔들고, 높은 시장 변동성이 눈앞을 흐리며, 시장을 거꾸로 타고 있다는 고통이 매니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릴 때, 이러한 파도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일종의 곤조라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본시장의 최전선에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이들은 오늘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을 쳐다본다. 시시각각 바뀌는 차트의 현란한 기호들은 마치 자동차 계기판처럼 나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 같고, 옆에서 들려오는 동료의 탄식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를 빨리 돌려보는 것처럼 엄청나게 올라오는 메신저 창의 뉴스와 시장 정보들은 무엇부터 봐야 할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게 만든다. 그리고 분명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했을 애널리스트들과 해외 유명 투자자들의 코멘트와 분석 리포트는 머릿속의 생각을 근간부터 흔들어 버린다.
이런 다양한 요인들에게 다 영향을 받아버리면, 투자업에 있는 사람은 사실 오래가기가 쉽지 않다.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포트폴리오는 색깔을 잃게 되고, 단기 수익만을 쫓다가 결국 큰 흐름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리스크를 지다가 걷잡을 수 없이 큰 화를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죽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가 중간은 가더라'라는 오해가 생긴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말도 듣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만 세냐고, 다른 얘기는 왜 들어보지 않는 거냐고. 이럴 때 펀드 매니저는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나오는 나팔산성에 틀어박힌 것처럼 절대방어를 구축하고 자신만의 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떠한 흐름 속에서도 자신의 논리를 바꾸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장의 변동성은 어디까지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사술이며, 반대되는 의견은 진짜 중요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 이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반대되는 방향성은 곧 더 크게 다가올 보상을 더욱 짜릿하게 해 주는 양념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여유가 있다면, 이를 끌어 모아 더욱 그 방향성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그렇게 견고했던 나팔산성이 폭탄 2방에 와르르 무너졌듯이, 리스크 한도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는 순간 그 포트폴리오는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곤 한다. 손절이 손절을 부르고, 더 큰 손실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매니저 본인이 내상을 입고 무너진 사고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재수련의 시간을 스스로 갖게 된다. 정말 심하면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간단명료한 답은 언제나 있다. '잘' 하면 된다. 어떤 때는 유연하게, 어떤 때는 흔들리지 말고 가늘게 빛나는 silver lining을 잃어버리지 말고 잘 따라가면 된다. 당연히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많은 투자자들이 달려들었다. 모델링과 같은 고도화된 수단을 도입하기도 하고, 차트 분석법과 같은 예술의 영역도 유입되었다. 동물적인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도 했고, 각종 위험지표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결국 절대적인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원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면 그 방법이 적용된 시장의 흐름이 또 새로이 형성된다. 그러면 원래 가정했던 시장과는 또 다른 성격이 하나 추가되어 버리기에 완벽한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찾는 시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시도되는 사례는 AI가 아닌가 싶다. 과거 퀀트 모델과는 다르게 딥러닝을 통해 형성된 AI의 투자 알고리즘은 개발한 사람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AI가 도입된 이후 아직까지 시장을 석권하지 않을 것을 보면 이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는 시도 속에서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맞이할 수 있는지 확률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도구들은 계속 생기고 있다.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고, 횃불도 생기고 랜턴도 만들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이 맞는 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길에서 떨어져 버릴 위험은 줄여가고 있다.
도구도 이것저것 생기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갖추어야 할 퍼즐이 필요하다. 바로 자신만의 간결한 생각 방식을 가지는 것. 자신이 만들어 낸, 튼튼하고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형성되는, 그리고 여러 곳에 적용시킬 수 있는 생각 방식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부합되는 정보와 흐름은 깊게 파봐야 하고,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날려버리고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면 머릿속으로 형상화시켜 보자. 마치 에펠탑처럼. 에펠탑의 넓은 하부구조는 그 근거를 의미하고, 위로 뾰족한 구조는 근거끼리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결론들의 집합이다. 이건 하나의 예시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것을 형상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수없이 틀리고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의 크기와 횟수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성공의 횟수가 점점 더 늘어남에 뿌듯해지기도 한다. 사고 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견이나 정보에는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된다. 여기에 필요 없는 곁가지들은 쳐낼 수 있게 되면서 흔들림도 줄어들었다. 다른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집이나 곤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