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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hole Apr 19. 2023

The moment of truth

매일 아침 맞이하는 진실의 순간. 아침 9시.


  매일 아침 9시. 매일 돌아오는 저 시각은 저마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각일 것이다. 누군가에는 다가오는 회의에 짜증 나는 시각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책상에 앉아 펜을 굴리며 공부를 하는, 배움의 기쁨이 넘치는 시각일 수도 있다. 어젯밤의 피곤함으로 늦잠을 자버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급함이 넘쳐나는 시각일 수도 있고, 아침일과를 얼추 마무리한 누군가에게는 커피 한잔을 홀짝이는 여유로운 시각일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펀드 매니저, 특히 전통자산이라 불리는 주식, 채권, 외환에 관련된 펀드를 운용하는 이들에게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순간 중에 하나다.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그에 대한 분석들, 또 그 분석과 해석들에 맞춰 흘러오던 글로벌 투자자들의 포지션 흐름이 그대로 넘어와서 짠 하고 국내 금융시장에 결론을 내주는, 진실의 순간이 매일 오전 9시 정각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맞이하는 방식은 펀드 매니저들마다 제각각이다. 시작과 동시에 매매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선처럼 무심한 눈길로 관조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높은 변동성에 현혹되기 싫어서 아예 안보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100이면 100, 다 다르게 반응하지만, 모든 펀드 매니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것이 있다. 모두 이 아침 9시를 마주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펀드 매니저들을 포함한 여의도 금융업계 종사자의 출근시간은 다른 직장인들보다 좀 빠른 편이다. 대부분 웬만하면 아침 8시, 좀 빠르게 오면 7시 반 정도에 출근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제 시장 변동과 내 펀드의 수익을 비교해서 어떤 부분이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가격변동에 어느 정도로 민감한지 분석한다. 그리고는 어제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 왜 있었고, 영향이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는 수많은 코멘트들을 접수해서 읽어보고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펀드 매니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며,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내 펀드들은 어떻게 하면 될지 정하고, 가격 시나리오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 9시를 대할 자세가 정해지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한 뒤에 금융시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저 위에 적은 일들을 다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저녁에도, 때론 새벽에도, 오지랖 넓게 다른 나라들은 안녕한지, 특별한 일은 없는지 궁금해하고, 금융시장 가격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때론 퇴근하고 나서도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들어 불평을 하고 핸드폰을 던져버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도 해보지만, 어느새 잠자기 전에 뉴욕 시장이 어찌 되고 있나 확인하는 게 일상다반사이다.


  즉, 아침 9시를 위한 준비는 전일 금융시장이 마감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한 것이다.




  준비를 하며 아침을 기다리면서 티를 내지 않지만, 기대와 공포를 각기 지니고 있다가 9시에 결론이 나온다. 준비하고 생각한 바와 같이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내가 준비한 바와 시장은 다르게 움직이는 날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또는 준비가 잘 안 되어 있던 날에 운 좋게도 다행스러운 아침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럼 무엇을 준비했던, 또다시 선택의 시간이 이어진다. 준비한 대로 가야 하나? 바꿔야 하나? 가만히 있어야 하나? 그리고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준비가 뒤따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장은 잠들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을. 그렇게 펀드 매니저의 아침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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