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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Sep 27. 2023

기념주화로 보는 세상: 서호-외로움은 유령처럼 배회한다

한창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이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했는지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삶은 항상 피곤하고 그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생각해 보면 생물에게는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어 있음이 더 자연스럽고 깨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보다는 자고 있는 상태가 더 본질에 가깝다. 물리학적으로도 무질서도(entropy)가 증가하는 법칙에 비추어 보면 생명이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야 하는 자체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재 의미는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면서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애틋한 감정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왜 자연의 원칙을 거스르며 죽지 않고 삶을 갈구하며 찰나의 순간에 불과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일까. 무한한 시공간이 펼쳐진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기에 우리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존재 자체가 태생부터 불합리하기에 영원히 우주의 비밀을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인간 신체의 감각 기관이 보고 체감하며 두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다차원 세상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원은 고사하고 찰나의 순간만 살다 가면서 나는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얼마나 삶을 낭비하고 있는가. 중년에게 찾아오는 외로움이라는 유령은 주변을 배회하며 인생을 낭비하게 하고 가끔씩은 지독한 우울감에 빠뜨리고는 한다.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친구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적 외로움은 단순히 친구라는 관계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지천명이라는 나이가 주는 작은 깨달음이다. 모든 관계를 통틀어 ‘자신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 대부분은 고독과 외로움을 두려워하고 심하게는 혐오한다.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에 마주할 때 비로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생긴다.


얼마 전 경매를 통해 구매한 중국의 세계 문화유산시리즈 ‘서호(西湖)’의 모습이 새겨진 기념주화 5종 세트가 있다. 서호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한 호수로 송나라 시대에 인력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담수호이다. 

<중국 세계문화유산시리즈 ‘서호’ 금 · 은화 5종 세트>

알리바바 본사가 항저우에 있어서 중국 출장 때 서호를 두어 번 관람한 적이 있었다. 호수를 산책하며 옛 선인들이 왜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읊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들 또한 지독한 외로움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지 않았겠는가. 눈을 감으면 노래를 부르며 호탕하게 웃고 떠드는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 같이 힘든 시기에 왠 쓸데없는 배부른 투정이냐 탓하지 말자. 세상을 자신만만하게 산 것 같지만 내면의 깊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으면 외로움의 유령이 되어 주위를 배회한다.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하루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매일의 기적에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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