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
나는 남들보다 뭐든지 느린 편이다. 하나를 외우려면 다른 사람의 두 배, 세 배 가까이 되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해하는 것도 느려서 다른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바로 이해하는 것을 여러 번 곱씹어 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눈치도 없어서 '눈치 없는 게 인간이냐'라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말처럼 인간도 아닌 상태로 살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욕심이 많았다. 남들이 아는 건 다 알고 싶고 남들이 이해하는 건 다 이해하고 싶은, 인간이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기였다. 길을 걸을 때, 씻을 때,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티브이를 볼 때도 혼자 '아까 내가 외우던 게 뭐더라? 왜 그렇게 된 거더라? '하던 습관 때문일까 내 고등학교 생활은 방탕했음에도 부산의 작은 대학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앞으로 있을 4개의 대학에 대한 서막이라는 것을 몰랐었지만.
생각이 많다는 건 분명히 단점도 있다. 그러나 내겐 너무나 귀중한 장점을 주었다. 바로 타인과 세상과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 덕에 나는 변할 수 있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어릴 때 시간 개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각도 잦고 아르바이트도 시간을 겨우 맞춰 나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크게 시간을 늦어버려서 그냥 그날 하루 일을 안 나가는 일이 생겼다. 씻고 준비해서 일하러 나가는 것 대신 그냥 누워있는 건 물리적으로는 아주 편한 일이어야 했지만 그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시 갑작스럽게 아프다던지 급한 일이 생겼다 던 지 하는 변명을 갖다 댔지만 그게 사실이 아닌 것은 나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나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피해를 봤을 사장님과 나 대신 일을 했을 동료에 대한 미안함도 그렇지만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거짓말해놓고 이렇게 퍼질러 누워있다니 최악이다.'
라는 비난을 나 스스로에게 듣게 된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무시하고 그냥 살던 대로 살기. 혹은 변하기.
앞서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고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나는 두 번째 선택지를 따랐다. 알람을 수십 개 맞추고 일어날 자신 없을 땐 그냥 밤을 새워버리는 훈련을 통해, 이제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경지에 도달했다.
나 자신을 교정하는 일은 어렵다.
정말 어렵다. 그게 바로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마다 내가 항상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다. 얼마나 힘들게 나를 사람 같은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서 단련해 왔는데 예전의 망나니 같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내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앞으로 더 좋아질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어려운 이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과거를 지나온 현재를 사랑하고 미래의 나를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태껏 주변 사람들을 피로하게 하는 엄청난 지각쟁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에서,
대게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 했을 때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한 실험에선 우연히 예측하지 못한 채로 보상을 받았을 때와 자신이 노력한 것의 결과물로 보상을 받았을 때, 도파민의 수치는 후자가 더 높다는 결과가 있었다.
나는 내가 노력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것은 바라지 않는다. 내가 우연히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노력에 보답하기보다 그 노력을 비껴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 스스로의 믿음이 중요하다. 노력해서 보상을 받으면 도파민과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설령 보상 없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노력한 건 내가 알잖아.
잘했어. 앞으로 더 좋은 내가 되어보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