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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Dec 01. 2020

언니 2

-2-

나는 그날 동이 틀 때까지 노랗던 우리 언니를 수없이 많이 드로잉 했는데요, 어쩐지 그 안에는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언니의 얼굴은 내겐 너무 멀었어요. 정말로 교수님 말대로 경황없는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을까요. 아니면 그 모든 빛을 삼킬듯한 까만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을까요. 언니는 알 수가 없는 얼굴을 하고. 교수님도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알지 못하는 건 무척 답답해요. 그러니 나 대신 언니가 교수님께 좀 물어봐 달라는 거에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 무슨 말이에요? 


코 끝이 시려오니 나는 다시 언니가 생각나기 시작해요. 언니는 그 일이 있었던 후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내렸어요. 호크니의 정원은 온데간데없고 웬 회색 인간이 표정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더라구요. 멍하니 프로필을 보다가 다시 눈앞에 노란색이 번져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먼저 눈을 질끈 감았어요. 어쩜 프로필에도 얼굴이 없나. 우리는 서로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더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어요. 들려오는 말로는 언니가 휴학을 신청하고 본가로 내려갔다고 했어요. 언니, 이제 곧 겨울이에요 언니. 




나는 여기까지 적고는 한참을 딴짓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80년대에나 있는 줄 알았다. 지금 같은 5G 시대에도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한 무더기라니. 글의 상단 한쪽에는 언제 그렸는지 모를 목탄 드로잉이 있었다. 이게 사실상 언니를 그린 마지막 그림이다. 그동안 다양한 도구로 언니를 그려왔는데 주로 원피스의 노란 색감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수채화의 노란색은 청명하고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긴 했지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사실 청명함과 쓸쓸함은 그저 내 상상일 뿐이었다. 남이 한 말만을 가지고 내 멋대로 덧칠한 비현실적 몽상이었다. 실재하는 건 노란 원피스를 입은 피사체밖에 없었다. 본질을 보여주지 못하는 붓질은 결 따라 마음에도 생채기를 냈다. 그래서 마지막엔 그냥 목탄을 꺼냈다. 어차피 여기엔 마음도 없고 색도 없어. 그저 선만 있을 뿐이야. 슥슥 몇 번 긋고는 손바닥을 옆으로 뉘여 살짝 문질렀다. 하도 노란색을 많이 썼더니 눈에는 그대로 색깔이 입혀져 있었다. 나는 내 눈을 비웃었다. 


그러고보니 학기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하도 언니만 그리고 있으니까 이 기이한 행위가 담당 교수의 귀에까지 들렸다. 교수는 연작 과제를 낼 것이니 그걸 제출하라고 하며 피사체가 실재하는 인물이냐고 물었다. 나는 언니에 대해 말할까 말까 고민했다. 문과대의 김 교수라면 몰라도, 미대 교수의 눈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는 실존주의 예술의 권위자였다. 캔버스에는 나와 너가 투과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어쨌든 이번 학기에도 한 번은 상담해야 할 것 같아서 박카스 한 박스를 사가지고 연구실을 찾아갔다. 


그래서 이렇게 걔를 계속 그리고 있단 말이지? 목을 축이던 박카스가 동이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봤더니 벌써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주제였나 싶었다. 평소엔 묵묵하지만 한번 말을 시작하면 뱉는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던 터였다. 나는 목을 매만지며 겸연쩍게 고개를 끄덕였고, 교수 역시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마음에 든다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나의 시선이, 나의 고민이, 그래서 그리는 그림이, 전부 다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다. 나는 마지막으로 박카스 한 병을 더 꺼내 주머니에 넣으면서 눈에 계속 어른거리는 특별한 노란색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수는 크게 거리낌 없이 연작 제목을 ‘언니’로 할지 ‘노랑’으로 할지 정하라고 했다. 거기에 답이 있을 거라며 대화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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