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조금 뻑뻑해진 눈가를 만지며 되물었다.
“ 그래서 이게 어디에 좋다고? “
엄마는 짧은 한숨을 톡 쉬더니 재차 말을 이어갔다.
“ 눈에 좋다고 했다니까. 너 눈이 얼마나 건조한지 알지? 이거 꾸준히 먹으면 안구가 촉촉해지고 시력도 향상된대. 그래, 3달만 먹으면 된다더라. “
“ 그래... “
“ 여기에 두고 먹는 게 좋겠다. 사는 집 꼴을 보니 너를 해롭게 하는 것 투성이야. 내가 아줌마한테 부탁해서 영양제 몇 개 더 주문해 놓을게. 챙겨 먹어, 알겠지? “
엄마는 등을 탁 건드리며 내가 대답하기를 종용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얇은 점퍼를 입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는 목을 주욱 빼서 주변을 기웃거리다, 당신은 이제 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현관에 서서 배웅 준비를 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막바지 효도에 집중하는 나. 그런 나의 몸짓을 엄마는 조금 더 오래 쳐다보았다. 눈에 오래도록 저장하고 싶은 것처럼.
“ 기원이는 잘 지낸대? “
나는 엄마의 발로 시선을 돌려버렸고 엄마는 보란 듯이 기원이 이야기를 꺼냈다.
“ 아… 글쎄, 최근에는 들은 적이 없어서. “
“ 그때 경찰 준비한다고 했었지? 아직 공부하는지 모르겠네. 떡집 아줌마 아들은 이번에 됐다고 하더라. 걔도 오래 공부했어. 냉동실에 넣은 떡, 그 집 꺼야. 합격했다고 떡 돌리더라고. 잘 챙겨 먹어. “
“ 알았어. “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엄마였다. 그러고 엄마의 손을 잡았다. 세희야. 엄마는 한 번 더 당부의 말을 붙이려고 했으나, 맞잡은 손이 어색한지 조용히 뒷말을 삼켰다. 나는 기어코 가란 말을 내 입으로 내뱉지 못하고 그녀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엄마가 더 하고 싶었던 말은 카카오톡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버스 타러 가는 중이라며 시작된 메시지는 냉장고에 어떤 음식을 넣었는지, 음식의 출처는 어떠하며, 언제까지는 먹어줘야 하는지 그 유통기한에 대한 장황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나는 메시지를 읽지 않고 알람으로 뜬 짧은 첫 구절만 확인하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기원은 엄마가 아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친구였다. 물론 그 애와 헤어진 뒤로 한 두 명을 더 만났지만, 엄마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연애기간 내내 어딘가 살짝 들떠있었다. 오늘은 기원이와 뭐 했냐고 물어보는 엄마의 표정이 매번 색달랐던 걸 기억해보면. 영화를 봤다고 하면 기원이가 재밌어했는지, 그게 기원이의 취향인지 한껏 궁금해했고, 도서관엘 갔다고 하면 기원이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 책은 전공에 도움이 되는 책인지 팔짱까지 끼고선 심각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성의를 다해 아는 걸 설명했다. 그러나 비좁을 정도로 꼭꼭 눌러 담은 이 마음은 엄마에게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불편한 호기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즈음 나는 기원에 대해, 그리고 엄마에 대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