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의 계절이다. 아니 단풍의 계절이다. 나뭇잎이 빨갛거나 노랗게 물들고, 더하여 갈색 빛이 감돌면서 우수수 떨어지고, 그런 낙엽이 발끝 가는 길마다 차이는 날들.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가을빛이 예쁘기도 하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얄짤없이 콧물 수난시대가 열린다. 우리 집 어린이도 에엣취하며 재채기를 하고 맑은 콧물이 나오기 시작하다가 결국 병원에 갔다. 어떤 병원에 가면 콧물감기약을 처방해주고 어떤 병원에 가면 비염약을 처방해준다.
비염인가요? 네, 비염입니다. 코감기인가요? 네, 코감기입니다. 비염인가요 코감기인가요? 네, 적당히 섞여 있습니다.
나는 알쏭달쏭한 물음을 지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래서 비염이라는 거야 코감기라는 거야? 파트너한테 메시지로 어린이 진료보고를 하면서 답답해졌다.
‘코감기인데, 비염도 있는 듯?’
언젠가 무자녀 기혼자들이 육아에 있어서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j는 계획이 틀어졌을 때 울고 싶다고 했고 육아는 매일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p인 나는 계획에는 큰 관심이 없고, 정답 없는 질문들을 헤매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답을 갈구한 걸까. 내 인생도 답이 없는데 왜 자꾸 답을 찾으려 드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콧물약과 비염약을 돌아가면서 쓰는 사이 동네 어린이들도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십사 개월 전까지는 다른 친구들의 콧물이 그렇게 신경 쓰일 수 없었다. 우리 집 어린이는 기관지가 약해 종종 입원해야 했다. 입원하면 당사자나 보호자나 얼마나 고된 생활을 보내는지 모른다. 게다가 코로나가 가족 구성원을 전부 할퀴어 가고 난 뒤에는 모두가 한층 더 나약한 코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바람만 불면 벌벌 떨었는데, 누군가는 유난이다 싶었을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꼭꼭 챙기면서 유난 떠는 걸 즐겼다. 이후 한 뼘 더 자란 어린이는 브레이크 없이 열이 치솟는 경우가 줄었다. 나는 철벽 방어하는 마음을 덜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는 집구석에 앉아 있으면 의심과 투쟁으로 가득 찬다. 먼지와의 대결이다. 티비장 위에 뽀얀 먼지가 속을 태우고 굴러다니는 엉킨 머리카락이 의아하다. (로봇청소기를 돌린 뒤다) 이때를 위해서 사둔 타조 털 먼지떨이를 꺼낸다. 걔가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물티슈로 먼지를 닦아냈을 때의 찝찝함보다는 확실히 다르게 일을 한다. 먼지에는 물티슈가 상극인데 닦아 보면 안다. 그냥 짜증이 난다. 먼지들이 완벽히 젖은 먼지가 되어 사방팔방에 붙어서 나를 괴롭힌다…
타조털이 할 일을 다하고 나면 클리너를 꺼낸다. 일명 돌돌이라고 테이프가 돌돌 돌아가며 먼지를 털어간다. 클리너로는 주로 매트 위를 닦는다. 마지막은 항상 소파 밑에 집어넣는다. 소파 밑은 블랙홀이라서 뭐든 빠진다. 그 곳에는 세상의 모든 먼지와 머리끈과 색종이와 잃어버린 장난감이 들어 있다. 클리너로 다 당겨와서 정리하고 나면, 테이프의 접착 면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약간의 쾌감과 함께… 피곤함이 남는다.
나는 9월에 태어났다. 가을에 태어났다고 하여 가을을 좋아했다. 이제는 기후위기가 도래했으니 정정해야겠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가을이었지만 지금은 늦여름이 되었으니, 여름마저 내 계절이라고 주장해볼 수도 있겠다. 하여튼 가을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계절이고, 바깥 활동하기 적절한 날들이 이어진다. 어린이가 콧물을 훌쩍거리는 것만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