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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Oct 29. 2022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

직업인으로서 서비스 기획자는 어떤 것들을 요구받을까? 

나는 전공에 맞춰 이와 비슷한 일을 할 줄 알고 회사에 입사하였다. 예상과 다르게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콘셉트를 도출하는 일보다는 임원의 눈높이로 어떤 기술에 집중할 것인지, 어디와 협력할 것인지를 더 오랜 시간 들여다보게 되었다. 서비스 기획 실무를 좀 더 하고 싶다는 바람도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전공과는 다른 직무를 하면서 모든 일들이 안 좋았던 건 아니다. 



'케이크'라는 디저트를 만들 때 밀가루, 계란, 버터가 얼마나 신선하고 훌륭한지도 중요하지만, 각 재료를 모두 넣었을 때의 조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재료들로 '케이크'를 만드는 게 맞는지 '쿠키'를 만드는 게 나을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 역시 꼭 필요하다. 케이크를 만든다면 3년 뒤에 어떻게 리뉴얼할지 앞으로 나아갈 지점이 무엇인지, 이런 고민은 누군가 꼭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복잡하다. 사용자들을 여럿 인터뷰하여 불편사항을 포착하는 과정과 대표 콘셉트를 만들며 UX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이어진다. 과거 대비 현재 뛰어난 사용 편의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포인트를 개선할지에 대한 고민이 반복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만든 서비스에 애착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가끔 공동으로 만들어 놓고도 '이걸 정말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되지만 그동안 들여온 노력과 에너지가 커서 그대로 서비스를 이어 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도 3년 전 각종 심리학 논문을 뒤지고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1년간 공을 들여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과연 이 서비스가 돈을 주고 살만한 서비스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매우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애착이 있기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전체적인 맥락을 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다른 서비스에 비해 내가 만든 서비스가 가장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서비스 기획 업무가 주된 업무가 아니고서야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서비스를 기획한다는 건 무엇일까, 훌륭한 서비스의 기준은 무엇일까, 끝까지 살아남는 서비스의 조건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들이다.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을 물어보면 사용자 조사를 통해 상위 콘셉트를 도출하고 콘셉트에 맞는 시나리오들을 뽑는 것들을 생각한다. 때론 구체적인 유저 플로우를 설계하거나 디바이스에 따른 화면 설계까지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따라서는 서비스 매니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서비스 기획자가 하는 일들은 대체로 이러한 내용들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하면 정말 충분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셈일까? 각각의 일은 훌륭하게 잘 수행해도 결과는 서비스 드롭이나 서비스 오픈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 즉 회사에서 기대하고 있는 바는 화면 설계를 아주 잘하고, 유저 플로우를 잘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비스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더더욱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고객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 '비즈니스적으로 이익을 안겨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려면 서비스 기획자가 당연히 알아야 할 화면 설계나 콘셉트 도출은 물론이고 회사 내부의 수많은 이해관계 부서나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간 지루한 협의 과정 등이 필요하다. 


아무리 애정이 있는 서비스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고집으로 서비스를 만드는 것인지 정말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보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나 역시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데 아무래도 애정을 갖고 기획을 한 만큼 내가 만든 서비스가 가장 훌륭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간에 점검을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점검받지 않는다면 나중에 서비스를 책임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방향성이 이상하다면 끝까지 서비스를 책임지기 위해 소신을 갖고 방향을 변경하는 것도 필요하다. 


혼자만 머릿속으로 생각해서는 서비스를 끝까지 책임지기가 어렵다. 혼자 모든 업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권자를 포함해 함께 일하는 개발자, 서비스 기획자, 디자이너까지 책임질 수 있는 서비스에 동의를 해야 한다. 추상적으로 콘셉트만 이야기해서는 모두를 설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미리 자료 수집을 하며 책임질 수 있는 서비스의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서비스가 나오면 어떤 모습이 될지도 이미지로 보여준다면 각자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방향성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서로 동상이몽을 하지 않도록 미리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을 떠올리면 예쁘게 화면 설계를 하고 콘셉트를 화려하게 만들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주로 하는 업무들이기 때문이다. 넓은 안목으로 볼 때 과연 주로 하는 업무들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가 맞을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푹 빠져있을 땐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사람이든 일이든 정신이 온통 쏠려 있을 땐 집중하는 대상만 바라보기 쉽다. 그런 면에선 잠시 떨어져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귀중하다. 약간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내가 하는 일, 생각, 감정들이 거짓이었는지 진실이었는지, 역할이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내 역할은 무엇인지 계속 의식을 하면서 일을 하고 싶다.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중심을 꼿꼿이 세워 회사원이 아니 직업인으로서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은 조직에 따라 요구하는 기대치가 모두 다르겠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으로 기획하다 보면 모든 노력은 민들레 씨처럼 어딘가에서 싹을 틔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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