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 Dec 19. 2023

동네 생활의 즐거움 (feat. 편의점 군고구마)

따끈한 겨울의 편의점 낭만

겨울이다. 퇴근길에 군고구마 생각이 났다.

실은 저녁으로 뭘 먹을지 많이 고민한 날이다.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군고구마가 제일 먹고 싶었다. 통통하게 잘 구워진 고구마가.


어디 파는 곳이 없을까 짱구를 굴렸다. 어디선가 돌 위에서 굽는 군고구마를 본 것 같은데..

근처 편의점이 생각났다. 가까운 곳에 조금 큰 세븐일레븐이 있다. 거기라면 군고구마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미 다 팔렸으면 어떡하지.. 하면서도

발걸음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군고구마를 향해 가고 있다.


붕어빵과 고구마가 석쇠에 누워 있다.


결과는 럭키!

생각하던 군고구마가 구워지는 모습이다. 미니 붕어빵 몇 개도 귀엽게 누워 있다.


카운터에서 "군고구마 하나요."하고 계산했다. 편의점답게 봉투를 주시면 셀프로 담으면 된다.


그런데 이 종이봉투 느낌 있다.  고구마~  것의 달콤함이  미를 당겨~  이써~ (…) 정말 아무 말 대잔치 원탑급이 내 취향이다.


심지어 커피 제공 행사 중이었다. 감기에 걸린 상태와 저녁시간만 아니었다면 바로 테이크아웃 했을 테다. 아무튼 커피는 못 마시지만, 헬로키티 50주년 기념 종이컵마저 귀여워서  챙겼다.


따끈한 군고구마는 들고 오는 길부터 손난로 대용 :)



위로 들어 올리는 투명색 뚜껑을 뜨거우니까 조심스럽게 열고, 직접 군고구마를 고른다. 미니 붕어빵과 군고구마 몇 개가 석쇠에 따끈히 누워 있다. 이 장면이 뭔가 귀여워서 웃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군고구마를 사 봤다.


간단하게 계란후라이도 곁들였다.


맛은? 맛있다.

석쇠에 적당히 빠짝 하게 구워진 고구마. 따끈하게 입안에서 퍼지는 달콤함. 생각하던 그 맛이다.

직감했다. 올 겨울에 여기서 고구마를 자주 사 먹을 거라는 걸.


혼자 살면서 고구마도 쪄 보고, 감자도 쪄 본 나지만,

무겁게 사 와서 씻고, 나만을 위해 그 모든 일을 하기에는 조금 번거롭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퇴근할 때면 누군가 해 준 걸 먹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 요즘은 꽤 자주 그렇다.


빠짝하게 구워진 군고구마. 편의점에서는 석쇠 문을 열고 직접 고르는 재미도 한몫 한다.


다음날인 오늘 세븐일레븐에 또 들렀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날이다.


석쇠를 보니 군고구마가 어제는 네 개 정도 있었는데 오늘은 두 개만 있다. ‘아.. 만약 퇴근을 늦게 하는 날에 이미 다 팔리면 어떡하지.’


이럴 땐 물어봐야 한다. 군고구마를 봉투에 담고, 계산해 주신 카운터 직원분에게 여쭤본다.

나: "저.. 혹시. 저녁 늦게 와도 군고구마 있나요? 계속 구워지나요..?" (세상 심각)

직원분: "어 음.. 하루에 몇 개 구워요. 왜 그러세요..?" (독특한 질문이네..)

나: "아.. 저녁 늦게도 먹고 싶은 날이 있을 거 같아서요." (ㅋㅋㅋ내가 말하고서도 좀 웃겼다)

직원분: "아.. 근처 가까이 계세요?"

나: "네, 이 근처 살아요ㅎㅎ"

직원분: "아아ㅎㅎ 그러면 저희가 조금 더 많이 구워놓도록 할게요!“

나: "어머 네~ 감사합니다.^^" (대박)


그래, 올 겨울 군고구마는 여기로 정했다.

직원분과 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오늘 저녁 군고구마를 사 오는 경험은 즐거웠다. 석쇠에 따숩게 누워 있는 붕어빵과 군고구마를 보는 게 역시 즐거웠다. 따끈한 것들이 주는 어딘가 따끈한 기대감을 안고, 집 옆 가까운 편의점에서 군고구마를 간편히 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도 저녁 늦게 군고구마를 먹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손님의 말에, 그러면 더 구워 놓는다던 직원분과의 짧은 대화가 즐거웠다.


하루하루 이런 소소한 순간들을 마주할 때 지역사회의 일원임을 느낀다.


그리고 이 느낌은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서울에 혼자 살면서 더 선명히 느끼고, 소중히 여기게 된 감정이다.


나 역시 사람을 마주 대함에 있어, 누군가에게 이웃임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조하는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