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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18. 2020

내가 기억하려고 그래

  5개월 아기 목욕을 위해 아기를 안방 침대로 데려와 눕혔다. 신랑이 안방 화장실에서 아기 욕조에 목욕물을 받는 동안 나는 아기랑 눈을 맞추며 놀았다. 저녁 8시 30분, 이 시간에 아기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안방에 데리고 들어오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아는 것 마냥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에 헤에’하며 웃는 아기를 보며 나도 같이 웃었다. “왜 이렇게 이뻐, 왜 이렇게 이뻐”를 연발하며 아기 배를 간지럽히자 아기는 더 신나서 돌고래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호들갑 소리에 신랑이 안방 화장실에서 응답했다.


 “이렇게 이뻐해 줘도, 얘는 기억도 못할 거야.”

 “괜찮아. 내가 기억하려고 그래요.”



 며칠 전, SNS에 떠도는 어떤 엄마의 글을 읽었다. 꽃이 핀 아파트 단지 내 길을 아들과 함께 걸어간 일을 써놓았다. 중학생이 된 아들이 엄마보다 앞서서 길을 걸었는데, 엄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걸으며 옛 생각을 했다. 과거에 엄마는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같은 길을 걸었다. 엄마가 길에 핀 꽃을 보고 꽃 이름을 말해주면, 아들은 엄마를 향해 방긋 웃곤 했다. 그런 아들이 어느새 커서 엄마 목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이 이어폰을 꽂고 저만치 앞에서 걷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마저 사랑의 눈으로 그려놓은 글이었다. 그 짧은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차올랐다. 5개월 된 나의 아기가 나를 밀어내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저릿했다.


 요즘 아기를 안으면 아기가 내 가슴을 팔로 밀어낼 때가 있다. 바닥에 있는 장난감으로 가서 놀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아직 품에 안고 있고 싶은데, 아기가 나를 밀어내는 순간에 마음 아주 깊은 곳 한쪽 모서리가 파스스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이렇게 조금씩 내 품에서 멀어지겠구나 싶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부모 자식 간의 싸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빤한 말이고, 자식에게 죄책감을 씌워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비겁한 말이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키워보니 저 말을 하는 부모가 이해되기도 했다. 어쩌면 저 말은 “어떻게 내가 너를 사랑한 시간들을 기억 못 할 수가 있어?”하는 말 같다. 내가 아기에게 쏟는 이 사랑의 순간들을 아기가 잊어버릴 걸 생각하면 배신감에 마음이 욱신거린다. 아기가 온전히 기억해주길 바라는 게 무리한 욕심인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나의 하루는 모두 아기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뇌가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아기를 향했다. 아기에 관한 자극이 들어오면 몸은 재빠르게 반응했다. 새벽 2-3시에 아이가 빼엑하고 울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서 아기방으로 가서 아기를 안았다. 아침에는 아기에게 책을 보여주고, 장난감을 흔들어줬다. 낮에도 배고프다고 졸리다고 아기가 울면 내 몸은 재깍재깍 아기에게 달려갔다. 이유식을 만들고, 아기 장난감을 닦고, 아기 빨래를 하고 아기가 잠든 시간도 아기를 위해 움직였다. 저녁에 칭얼거림이 심해지는 아기를 안고 식탁의자에 앉아서 신랑과 저녁식사를 했다.


  하루의 꽉 찬 피로를 안은 채 안방으로 이동하면 마법이 발생했다. 아기의 행복한 미소가 터지는 마법이었다. 8시 30분 목욕 전, 아기의 미소로 내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아기의 이쁜 웃음과 함께 이쁜 행복이 차올라서 아기를 향한 애정표현을 쏟아냈다. 아기 목욕물을 다 받은 신랑도 웃는 아기를 보고 싶어 내 옆에 서서 자리를 잡았다. 내가 왜 이렇게 이쁘냐며 아기 왼 볼에 뽀뽀하면, 신랑은 아기 오른 볼에 뽀뽀했다. 그러면 아기는 특유의 돌고래 소리를 내며 간지러운 듯 웃었다.  그 모습이 또 너무 이뻐 내가 다시 왼 볼에 내 볼을 비비면, 신랑이 아기 오른 볼에 신랑 볼을 비볐다. 그러면 아기가 발을 팡팡 거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기는 기억도 못할 거라고 말한 신랑은 말과는 달리 본인도 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기와 같이 열심히 웃었다.


  피곤함에 몸부림칠 것 같은 육아의 시간은 생각보다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방실거리는 아기의 웃음이 피로를 밀어 때문이었다. ‘헤-’하는 웃음에 둥실, ‘꺄륵’하는 웃음에 두둥실, ‘끼야앗-’하는 웃음에 둥실둥실 들어오는 행복 덕분에 피로감이 오래 머무를 자리는 없었다. 하루하루 쏟는 나의 애정은 하루하루 아기의 웃음으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나는 이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점차 내 품을 벗어나 뛰어놀고, 어떤 날은 나를 향해 무표정을 짓기도 하고, 사춘기가 되면 나를 뒤로 하고 친구들을 향해 뛰어가는 생각을 해본다.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다. 아마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는 비겁한 감정이 와서 자리 잡으려고 눈치를 보고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기가 나에게 방실거리며 웃고 안기는 이 시간은 성장한 아기가 아니라 내가 기억해야 하는 시간일 것이고, 그 행복의 기억을 가지고 성장한 아기의 뒷모습을 사랑으로 바라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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