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쯤 전에 키우던 다롱이(화이트푸들, 남자아이)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다롱이는 여러 가지로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롱이는 베란다로 나가서 난간 사이로 비 오는 밖을 내다보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하루종일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곤 했다. '다롱아' 불러도 잠깐 뒤돌아 보곤 이내 무시하고 여전히 망부석처럼 바깥만 내다본다. 비만 오면 낭만 강아지가 되어 아예 식음을 전폐하는 이 이상한 강아지의 조그만 머릿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다롱이의 재미나는 버릇 또 하나. 꽃이 만개한 곳에 다롱이를 풀어놓으면 항상 다롱이는 헤헤거리면서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굉장히 큰 꽃 앞에서 킁킁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앉아 있는다. 그 상태에서 안아 올리려고 하면 팩 하고 화를 낸다. 으르르 대감님이 꽃에 취해 있겠다는데 어느 놈이 날 방해하느냔 말이다. 해 떨어질 때까지 꼼짝 않고 새똥이나 맞고 있을 판이라 아예 거기 집이라도 지어 줘야 할 지경이다. 다롱이한테 여친이라도 있었다면 다롱이는 큰 꽃을 따다 물고 어디론가 삘삘 사라졌을 게 분명하다.
나는?
화무십일홍이니 뭐니 하며 어차피 며칠 후면 시들어 버리지 않느냐 했을 뿐, 바로 그 이유로 꽃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 됨을 알지 못했다. 당신들이 아름답다 하는 꽃은 식물의 성기라는 둥, 꽃이 사람의 성기를 잘라 자기들끼리 구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둥, 한 술 더 떠서 인종별로 꽃말을 붙여 사랑이니 순결이니 기다림이니 나발이니 하고 있으면 참으로 퍽도 아름답겠다는 둥... 정작 온 세상은 사시사철 꽃으로 덮여 있는데,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봐도 세상은 온통 꽃인데, 그런 똥나발 같은 장광설로 견강부회하고 있을 시간에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기쁘게 할지 그 하나를 고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니,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상대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거니, 배가본드 놈아?
나에게는 꽃 선물에 늘 특별한 이유가 필요했다. 세칭 무슨 데이 또 무슨 데이, 어버이날, 입학식, 졸업식 등. 그런 날이 아니면 누구에게 꽃을 줄 생각 자체를 못했다. 꽃이라는 건 아주 특별한 날에만 주고받는 선물이며, 우리의 일상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사치품 내지는 예쁜 쓰레기였을 뿐이다.
꽃 앞에 서서, 항상 나는 못 줄 이유를 찾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라는 둥, 그냥 보는 것 말고는 쓸 데가 없다는 둥, 뒀다가 찌개나 끓여 먹으려고 하냐는 둥, 그나마도 며칠 못 가서 쓰레기 된다는 둥, 이 모든 것들을 감안할 때 너무 비싸다는 둥... 줄 이유보다는 못 줄 이유부터 먼저 찾고,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 이유보다는 늘 용서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고, 누군가를 사랑할 이유보다는 나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던 나의 상태는 일종의 마음병 같은 '증상'이었다.
유럽에는 어느 집이나 꽃이 있다. 유럽인들에겐 꽃이란 어떤 특별한 날에 주는 선물이라기보단 일상의 소비재에 더 가까운 듯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듯, 꽃을 주는 데도 특별한 이유가 필요할까. 꽃이란 그냥 줘도 좋은 것이다. 꽃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 있고 누군가의 일상에 꽃을 넣어 주는 건 그에게 에너지를 주는 일이며, 그 하나만으로도 그냥 주는 이유는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