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다.
누가 내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놓아두지 않는 상황을 아주 싫어한다. 물건이 급히 필요한데 내가 자리에 없으니 말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정 그러면 나중에라도 제자리에 놔두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애지중지하는 스테이플러가 어느 날 사라지고 두 달 후 K의 자리에 놓여있는 걸 보았을 때(그것도 내 이름까지 써붙여 놓았는데), 자리에 놓아둔 우산이 없어져서 퇴근길에 큰 불편을 겪고 다음날 그 우산이 J의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머그잔이 어느 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잃어버렸다 생각들 때쯤 다른 팀의 P가 자기 자리에 놓고 쓰는 것을 알았을 때, 그 하나로 그 사람과 말을 섞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나는 공감능력이 낮다.
중1 때 국군장병 위문편지를 쓰라고 해서 "아자쒸 군대에서 맨날 춥고 졸리고 배고프고 엄청 힘들죠? 군대 가실 때 되게 가기 싫지 않으셨어요? (후략)" 이랬다가 담임선생님이 다시 써오라 하셨던 적이 있다. 작년 말 부서 종무식에서는 새해맞이 일출구경 가는 얘기가 나오길래 "해는 그냥 아파트 옥상 올라가서 보면 안되나요?" 했다가 사무실을 빵 터뜨려 버렸다. 난 웃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난처했다. 하지만 반대로 웃기려 했다가 실패하는 건 더 난처할 테니 그보단 나은 거라고 위안을 삼는 걸로...
나는 INFP다.
일반적으로 무척 예민한 반면 감수성이 뛰어나서 공감지능도 높다는 그 INFP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예민하고 공감지능이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예민하기만 하다. INFP에서 INFP의 장점만 빼면 그게 나다. 아이고, 글을 쓰다 보니 현자타임이 온다. 이거 정말 계속 써야 하나.
"당신 그래갖고 사회생활 가능은 하시오?"라고 누가 묻거든, 나름 큰 문제없이 하곤 있다고 말하겠다. 친구는 많지 않지만 딱히 적도 없고,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생기는 정도의 생활 기스 말고는 크게 문제도 없다. 나의 예민함 지점이 유별나긴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고 산다. 다른 사람들은 비록 드러내 보이지 않을지라도 각자의 예민함 지점이 어딘가에 있고, 나는 나대로의 지점이 어딘가에 있을 뿐이다.
내게 예민한 지점이 상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상대에게는 예민한 지점인데 정작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누가 특별히 민감하거나 특별히 둔감한 사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예민하고, 각자의 지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예민할 뿐이다.
연인이든 부부이든 친구이든, 중요한 건 그 스펙트럼의 싱크로율인지 모른다. 민감 스펙트럼이 일치하면 가장 좋겠지만, 꼭 일치까진 아니어도 내가 민감하지 않은 지점에서 상대가 민감해할 때 상대의 그 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쩌면 이게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예민함 궁합이라 한다면, 그거야말로 사주궁합, 속궁합, 성격 궁합 등 알려진 모든 궁합들에 가장 우선하는 숨은 궁합인지 모른다.
가장 좋지 않은 건 "넌 너무 예민해." 이래 버리는 거. 이건 '난 너의 예민함을 수용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뭔가에 예민하다는 건 같은 자극을 남들보다 크게 감각한다는 말이고, 특정 지점을 자극당했을 때 분노를 더 크게 느낀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뜸 '넌 너무 예민해' 이게 되면 상대는 자기의 감정을 더욱 큰 목소리로 표출하려 하고, 가끔은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터져 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되면 완전히 악순환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상대에게 너무 예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작 상황에 따라서는 정반대가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얘기가 있다. 아내가 명절 준비로 종일 힘들었던 상황. 손님이 가고도 일은 끝이 없는데, 남편이 개수대에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보며 "설거지, 내가 해줄까?"라고 물었다. 이 말에 마음이 불편해진 아내는 남편에게 "왜 해 준다고 말해, 그냥 하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한다. 그랬더니 남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참, 예민하기는..."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얼핏 보면 호의 같지만, 남편은 가사 노동은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네가 정 힘들다면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 아내에게 시혜를 베풀듯 말하고 있다. 아내는 이걸 느낀 듯하고, 그런 거면 하지 말라는 걸로 보인다. 어딘가에서 이 말을 하니 여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다 아는 듯 말하냐고 한다. 에라이 그럼 파브르는 곤충이라서 곤충기를 썼는가? 이 갈등의 본질은 설거지를 하느냐 마느냐보다 상대의 예민한 부분을 수용할 의사가 없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한술 더 떠서 '고작 설거지 안 해 줘서 삐진 여자(?)'가 되어 버리면 정말 골 때리겠다. "참, 예민하기는"이 이렇게나 나쁜 말이다. 이건 상대의 감정은 아예 잘못되었다는 뜻까지 품고 있다. 그런데 감정이 잘못될 수도 있나? 그 직후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상상만 할 뿐이다. 보따리 싸서 현관문 나가는 뒤통수에 "날 두고 가시나" 했을까?
학교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친구(남학생)를 옆칸에서 칸막이 너머로 훔쳐본 학생(남학생)에게 법원이 학폭(성폭력) 처분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댓글들이 놀라웠다. 너무 예민하다, 세상 참 각박해졌다, 동성끼리 그게 왜 수치스럽냐, 참 이상하다, 학교의 낭만이 사라졌다... 대부분 상처받은 쪽의 감정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백 번 양보해서 그 학생이 예민한 거였다고 치더라도 일단 그렇게 느꼈다면 그 감정에 중립 기어를 넣어 줄 수만이라도 없을까. 왜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매서운 재판관이 되는 걸까. 감정을 원천적으로 부정당하는 건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혹한 2차 가해가 될까.
흔히들 말하는 "INFP는 예민하다"도 일종의 바넘 효과(=일반적이고 모호해서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성격 묘사를 특정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현상[출처:나무위키])인지 모른다. 안 민감한 사람이 어딨어, 다들 싫은 건 싫지. 누구한테 상처주곤 "넌 너무 예민해" "난 뒤끝은 없어"를 시전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가 똑같이 당하면 눈이 홱 뒤집히던데.
요즘은 초면에 MBTI를 많이들 묻는다. 상대방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라 한다. 그런데 정말로 상대를 더 잘 파악하고 싶다면 그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가 무엇에 남들보다 특히 민감한지 그것부터 궁금해하는 게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보다 나은 길은 아닐까.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도, 누군가와 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것도, 그가 남들보다 크게 감각하는 지점을 많이 안다는 건 아닐까.
MBTI가 같으면 많은 사람들은 찰떡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같아도 예민함 지점은 얼마든지 서로 다를 수 있고 그걸 수용할 수 없으면 서로를 저주하는 불구대천의 원수일 뿐인걸. '아니, 서로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도대체 왜?' 왜긴 왜야, 애초에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었으니 그렇지. '아니, MBTI가 똑같은데 왜?' 어휴, 이제까지 했던 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까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