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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Aug 22. 2022

진정한 견통령(犬統領)은 접니다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얘기. 1950년대 제1공화국 시절, 대구 지역의 모 일간지에서 대통령을 견(犬)통령으로 잘못 쓴 기사가 나갔다. 사장은 바로 해임되고, 편집국장은 아예 구속되고, 신문은 무기한 정간되었다.


당시 수작업으로 활자를 하나하나 배열하며 신문을 만들던 모습 (사진출처 : 기호일보)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지금은 워드프로세서로 편집해서 찍어내면 되지만 때는 활판에 활자를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심어 넣고 기계에 넣으면 기계가 활판에 잉크를 발라서 종이에 찍어냈다고 하니, 대통령이 졸지에 견통령이 되는 일도 어쩌다 있을  있는 ....라는  개뿔 그건 나의 생각이고,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전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어련하시겠냐, 망할. 그분께서 방귀를 뀌니 옆의 내무부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외치던 시절인데, 뭐? 견통령? 다 뒈졌다고 봐야지 뭐.

아니 화를 낼 것까지야, 누가 실수로 견통령이라 했다고 진짜 견통령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고, 진짜 견통령은 그분이 아니라 나다. 외국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어딜 가면 개들이 이상할 정도로 나를 좋아한다. 처음 보는 아이들조차도 발랑 드러누워 헤헤거리니 누가 견주인지도 모를 정도다. 개들이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은 하지만 실은 제가 기습적으로 견통령이걸랑요. 특정 한두 마리가 아닌 민중의 아니 견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니 그야말로 정통성 최고의 진정한 견통령 아니랴? 일단 견통령 타이틀부터 좀 뺏어오겠다 :P




"있잖아요, 그거 아세요? 개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는 거."


이분들의 하나같은 말씀은 '심성이 선하지 않으면 애초에 개를 좋아할 수가 없다'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한테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마르코스, 푸틴. 이들의 공통점이 뭔지는 아냐고 묻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그래 봤자 "뭐든지 예외는 있잖아?" 이게 될 게 뻔해서 오래전에 깨끗이 포기했다.


동물보호법을 최초로 만든 이는 바로 이 사람이다.
요즘 뉴스에서 날마다 hot한 그도 애견 사랑은 둘째라면 서럽다...

오랫동안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있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개는 좋아하지만 인성이 의심스러운 이들은 넘쳐난다. 직장에도 '그분께서지나간곳 풀한포기안남는다'라는 표어가 늘 따라다니는 분이 계신데, 그분의 개사랑은 당할 장사가 없다. 다만 개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모든 직원을 개같이 대한다는 게 함정일 뿐이다.


공원이나 산책길에 나가면 목줄 없는 대형견을 가끔 볼 수 있다.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매너 목줄을 부탁드리면 대부분 좋은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이런 식이 태반이다. "우리 개는 착해요"라고 하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다.


배려심과 자비심 많은 사람이라서 개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건 개가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절대복종하기 때문이다. 자기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 주는 게 개다. 굳이 따지면 동물사랑보다는 자기애에 더 가깝다. 개를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 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사람이 개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개를 좋아한다고 맑은 영혼을 가졌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확률적으로는 더 좋은 사람들이라고 빡빡 우기는 사람도 수없이 봤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기가 자신이 없다. 반려동물 동호회라고 이상한 사람이 딱히 적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에서 ◎◎에 들어갈 단어만 바뀌어 각인각색으로 변주되는 말이 늘 그렇듯 자기가 그렇다고 규정해 놓으면 그렇게만 보이고, 나중에는 아예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검증되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완벽히 밝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우리 다롱이를 비롯한 무수한 아이들이 견통령으로 떠받들다시피 하는 나조차도, 개를 안 좋아하면 차갑고 인간성 별로일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툭하면 '왜?'만 달랑 던져주고 그 사람에게 온통 '설명 책임'을 지게 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마치 네가 인간성 별로인 사람이 아님에 대한 입증 책임을 안겨 주듯이. 취미와 인간성은 애초에 별개인데 그 둘을 밀접한 걸로 엮어 버리니 이 모양이다.


억지로 좋아해 달라고 한 적 없는데영

호기심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서 "개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라고 검색하니 결과가 쇼킹하다.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결과들이 이렇다.


- 개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
- 토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
- 꽃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등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
- 바다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캠핑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애니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음악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귀여운 거 좋아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
- 방탄소년단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요가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인형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빵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요리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여행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책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채식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 바나나우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X'이기도 힘들지 않을까? 아무래도 이거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만 사는데 그걸 나만 몰랐나 보다. 다들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어쩌면 우린 예전에 모두 죽었고 지금 천국에 와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선 세상에 나쁜 사람이 이다지도 없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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