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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Sep 1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내 흉터까지 사랑하기로 했다.

오늘 내가 1년째 교류하고 있는 작가님으로부터 "방어기제가 높고 상처가 많아 보인다"라는 코멘트를 들었다.(무례한 게 아니라 그 코멘트가 나올 만한 상황&맥락이었다.)


이로써 나에게 이런 말을, 그것도 완벽히 똑같은 맥락과 단어로 전달한 사람이 다섯 명 정도 된다.

내가 짝사랑했던 A도 내게 똑같은 말을 하면서 나를 거절했었기에, 나는 정말 부단히 애를 쓰면서 더욱더 자존감이 높고 방어기제가 낮은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왔는데...  죽어라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살이 전혀 안 빠져있을 때 보다 더 큰 충격과 실망이었다.


여태 내가 심리상담과 자아 성찰, 그리고 심리 치유에 관한 책을 읽고 실천한 모든 노력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이쯤 되면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방어기제가 높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야"


사람들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내가 좋아했던 A도 단점이 수두룩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A가 좋았다. 결국 A는 내가 상처가 많아 보이고 방어기제가 세서 날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좋지 않았던 것뿐이다.


혹시 내가 방어기제가 낮아지고 상처가 많은 사람처럼 안 보이면, 그때는 A가 조금이라도 내게 마음이 열릴까 싶어서 나는 나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제 포기했다. (물론 A는 오래전에 포기했다.)


온갖 노력을 하는 모습이야 말로 상처받고 방어기제가 높은 사람이 하는 행동인 것 같아서. 상처받았으니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완전무결하고 싶은 것 같아서.


그래, 비록 나는 상처받아서 방어기제가 높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해줘야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을 찾으면 돼.


누군가가 당신에게 "너는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어! 그래서 널 사랑하지 못하겠어"라고 말하면 꼭 기억하자. 그 사람은 애초에 그런 단점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사랑할 능력이 부족하기에 그런 단점의 핑계를 대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기술이라고 했다. 사랑의 기술이 충분히 연마된 사람이라면 당신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줬을 수 있다. 기술이 연마된 양궁선수가 바람이나 관중의 야유를 탓하는 적을 본 적 있는가?


물론 자신의 단점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고치는 것은 숭고하고 성숙한 행위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단점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을 해칠 수 있으니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있더라...)


하지만 정말 양심에 손을 얹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더라도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라면 그 마저도 사랑해줄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이 해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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