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 : 배를 부리는 일을 하는 사람
배를 목적지까지 리드해야 하는 사공이 많아 제 멋대로 노를 저으면 배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 이상한 곳으로 돌진하게 된다. 당연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했기에 다양한 나라에서 비슷한 속담들이 많다.
튀르키예 : 수탉이 많은 마을은 아침이 늦게 온다.
영국 : 요리사가 많으면 국을 망친다.
러시아 : 유모가 일곱이면 아이 눈이 빠진다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은 권력관계가 수직적으로 잡혀있지 않은 많은 스타트업, 중소기업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 회사를 나는 '사공회사'라고 부른다.
앞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책 속에서는 창업주의 가치관에서부터 시작을 하라고 하였으니, 창업주인 대표님과 소통에서부터 과업의 실마리를 풀어보려 하였다. 하지만 세상 일은 뜻대로 안 되는 것이 기본이기에 창업 3년차의 회사를 안정권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 대표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한 번 의견을 나누기도 어려웠다.
겨우 미팅의 기회가 생겨 조직문화에 대해 필요성을 강조하며, 조직의 가치체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그렇게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매출과 기업의 생존의 지상목표인 분에게 그런 것은 들릴 리가 없었다. 답답함이 들 때마다 마음같아선 대표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당차게 "조직문화가 반드시 설계가 되어야 하니, 이런 이런 도움을 주십시오!"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직문화라는 것이 '10억의 마케팅 예산을 쓰면 15억의 매출 효과가 기대됩니다.'처럼 수치로 근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거의 모든 인사 업무가 그러한 듯 하다. 그래서 어떤 금전적인 부분을 건의드리기가 조심스럽다. 게다가, 이 조직문화를 처음 설계부터 진행해보는 나였기에 이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없었다.
'가다보면 길이 있을테니, 일단은 해보자!'의 상황에서 길이 좌초될 수도 있는데, 대표님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창업주의 가치관을 들어본 후에, 그 가치관에 맞게 조직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설계하고 Top-Down으로 전파에만 신경쓰면 되겠거니 하고 쉽게 생각했던 과업이 한순간에 난이도가 급상승해버렸다. 덕분에 조직원 모두의 이해와 동의의 과정을 하나하나 거쳐가며 모두가 원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야 Top-Down 방식이 아닌 이 방식이 오히려 긍정적인 과정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다.)
조직문화를 설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남아있던 조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하니, 이쪽도 만만치 않은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각자가 열심히 자기의 의견들을 발산하기에만 바빴고, 어떤 직원들은 '초기멤버의 의견을 이렇게 안 들어주는 게 말이 되냐'라는 댓글을 잡플래닛에 남길 정도로 모두의 자아가 강렬했다.
사공이 많아서 산으로라도 가야 하는데 사공이 많아서 앞으로 가지도 못했다는 편이 적절한 표현이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대표님이 인맥을 기반으로 창업한 회사가 아니었기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있었는데, 당시 조직의 구조는 이러하였다. (대략 창업 3년차가 된 극초기의 조직이었다.)
- 창업자인 대표님
- 대표님이 초기에 채용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나 난이도는 낮은 업무를 주기 위한) 주니어 직원
- 주니어 직원을 관리할 수 있는 두어명의 부장(큰 회사의 기준으로 과차장급)
안타깝게도 그들은 모두 본인들의 회사의 핵심인력이자 의사결정자라고 생각하며 동상이몽에 빠져있었다.
주니어 직원들은 회사의 초기에 합류했으니 오랜시간 몸담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주장하고, 부장들은 의사결정권이 대표님 다음으로 바로 자신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대표님은 당연히 본인이 회사의 주식을 100% 가지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예를 들면, 초기 멤버였던 주니어 디자이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업무 소통을 해달라며 소통의 양식을 만들었고, 부장급들은 본인들은 야근을 하는만큼 늦게 출근을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자기관용을 베풀고 있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각자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고, 쉽게 말하면 그냥 엉망진창이었다.
이 핵심인력이라 착각하는 숨막히는 사공들 사이에서 "조직문화가 없어서 이렇게 엉망진창이니, 우리의 기준이 될 문화를 만듭시다." 라는 말을 꺼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핵심인력의 입김보다는 공통의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