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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담 Oct 21. 2024

붕어빵을 판다는 건 겨울이 오고 있다는 증거

 

 왔다.
 마트로 향하는 건널목, 익숙한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다. 그 말인즉슨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 반팔티를 입은 사람보다 두둑한 재킷을 걸친 사람의 수가 우세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찐빵, 호떡, 붕어빵 등 겨울을 상징하는 몇 가지 음식이 있다. 아무래도 붕어빵 트럭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로 봐서는 겨울 간식 중 제일은 붕어빵이지 않나 싶다. 마트 주변에 자리 잡은 이 트럭도 그중 하나다.
 
 근 1년 만에 본 붕어빵 아저씨가 어찌나 반갑던지. 말 한번 섞지 않더라도 오다가다 보면 친밀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손님 한 명 없었는데 어디선가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그새 트럭 주위를 에워싼다.
 아무래도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다.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겨울이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크리스마스가 있으니까. 크리스마스가 좋은 이유엔 캐럴도 한몫한다. 은은한 종소리만이 줄 수 있는 몽글몽글함이 겨울을 더 겨울답게 만든다.
 빠르면 한여름부터 캐럴을 듣기 시작한다. 숨 막히는 날씨 탓에 하루라도 빨리 겨울이 와주십사 듣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간에, 그러다 보니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여름의 절반이 지나갈 때쯤이면 '얘가 슬슬 들을 때가 됐는데'라며 합리적인 의심을 하곤 한다. 다행인 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 굳이 찾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련히 유튜브에 겨울 관련 플레이리스트가 뜬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든가, '여름에 듣는 캐럴'과 같이 창밖 기온과는 괴리감이 드는 제목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늦여름이 끝나고 공기가 서늘해질 때쯤엔 크리스마스 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특히 꼬마 친구들, 밤사이 산타 할아버지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간다고 굳건히 믿는 아이들이 그렇다.

 01. 북적거리는 지하철 안, 어디선가 징그벨송이 야무지게 들린다. 사람들로 시야가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무릎 언저리쯤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로 봐선 네 살배기 정도 꼬마가 그 주인공인 거 같다. 

02. 장을 보고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엄마와 어린 두 형제. 기다림이 지루했는지 첫째로 보이는 아이가 쉼 없이 쫑알댄다. 대화의 주제는 산타.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지에 대해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머지않아 스스로에게 일방적인 대답을 한다.
  - 그럼 나는 Z로 할래. 산타 할아버지는 뭔지 다 아실 테니까!
산타 할아버지만큼이나 많은 걸 알고 있는 꼬마다.




 순수함은 어떤 표현보다도 강렬하다. 여과되지 않은, 마치 강아지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것만큼 직설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표현하는 데 자제력이 생긴다. 산타 할아버지의 정체가 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과 같이, 이상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겹겹이 마주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을 사리게 된 탓이지 않나 싶다. 눈이 펑펑 내리면 '예쁘다'기보단, 집에 갈 걱정부터 하는 어른이 된 게 바로 그 증거일 거다.

 그래도 어른도 한때 작은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느낄 때가 있다. 일말의 순수함이 남아 있는 순간.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한다거나, 조명 아래 산타 인형을 주렁주렁 걸어두는 것. 분위기 있는 캐럴을 틀어 놓거나, 동네에 세워진 붕어빵 트럭을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까지도.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명확한 표현 대신 애써 두리뭉실하게 마음을 전하는 미성숙한 애어른 같다.
 
 올해 첫 붕어빵, 팥앙금이 한가득이다. 손끝이 시릴 때 먹는 붕어빵은 얼마나 더 맛있으려나.
 붕어빵의 이름으로, 느린 듯 빨리 오고 있는 겨울을 환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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